[재경일보 유혜선 기자] 서울 서초경찰서는 2일 수면유도제를 투여한 여성 환자가 숨지자 시신을 내다버린 혐의(사체유기 등)로 산부인과 전문의 김모(45)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의사 7∼8명 정도 규모의 병원에서 '페이닥터'(병원에 고용돼 월급을 받는 의사)로 일하는 김씨는 지난달 30일 오후 10시30분께 자신이 일하는 서울 강남구의 한 병원에서 수면유도제 5㎎를 투약한 지인 이모(30·여·무직)씨가 숨지자 시신을 이씨의 자동차에 싣고 한강공원 잠원지구 주차장에 놓고 도망간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듣지 않자 시신을 휠체어에 태우고 주차요원에게 연락해 대기시켜놓은 자신의 승용차에 몰래 실었지만,
병원에서 '콜'이 오자 돌아가 진료를 한 뒤 3시간쯤 뒤인 31일 새벽 시신을 이씨 차로 옮겨서 시신을 유기했다.
이날 오후 한강공원 수영장을 찾은 한 시민이 비스듬히 세워진 이씨의 차 옆에 주차했다가 창문 안쪽으로 이씨의 모습을 발견, 이상하다고 생각해 112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시신에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수사가 시작된 직후 김씨가 변호인을 대동해 자수해왔으며, "이씨가 피곤하다며 찾아와 이 약물을 5㎎ 가량 투여했지만 2시간쯤 뒤 깨우러 갔을때 숨져있어 병원에 누를 끼칠것 같아서 범행했다. 투여할때 옆에 간호사는 없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1년 전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이씨와 자주 만나 식사를 같이 했으며 불면증을 호소하면 영양제를 투여해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에 따르면, 숨진 이씨는 평소 우울증으로 인해 수면장애를 겪고 있었으며, 종종 피로를 느끼면 이 의원에 들러 영양제 주사를 맞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재 투약에 고의성은 없었는지, 공범이 있었는지 등 범행 정황을 놓고 수상한 부분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오전 유족의 입회하에 이씨의 시신을 부검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외관상 특별한 외상이나 성폭행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면서도 "약물이 적당량 사용됐는지와 성폭행이 있었는지 정확히 가리려면 DNA 등 정밀 분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미 숨진 피해자는 아무 말이 없지만 객관적 증거를 통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처방한 수면유도제 용량이 치사량에 못미치는 소량이었다는 점, 이씨가 숨을 멈춘 것을 발견하고도 간호사 도움 없이 혼자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는 진술 등을 들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수면유도제는 당국에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해 관리하는 약물로 내시경 검사 등을 할 때 수면을 유도할 목적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급성호흡부전 환자에게는 치명적 부작용이 일어나는 등 신중한 투약이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