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예금증서의 하나인 표지어음을 위조해 47억 원가량의 불법 대출을 받은 전·현직 은행원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위조 사기단에는 현직 은행 지점장도 포함돼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50억원대 은행 표지어음을 위조해 이를 담보로 47억여원을 대출받은 혐의(유가증권위조 등)로 전 우리은행 직원 김모(49)씨, 정모(47)씨 등 2명을 구속하고 이들에게 돈을 받고 어음 용지를 제공한 혐의(특경가법상 중재)로 우리은행 부산지역 지점장 이모(50)씨도 구속했다고 9일 밝혔다.
경찰은 대출 과정에서 이씨 등에게 법인서류를 구비할 수 있도록 법인 명의를 빌려주고 3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서울 용산전자상가 내 컴퓨터 주변기기 판매업체인 I업체 대표 김모(37)씨도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 등은 지난 2월 2일 어음발행에 필요한 법인서류 등을 구비한 후 사채업자에게 빌린 50억원을 우리은행 서울 합정동의 한 지점에 예치하고 25억1438만3561원짜리 표지어음 2장을 발행받은 뒤 일련번호가 똑같은 어음(일명 '쌍둥이 어음')으로 각각 위조해 사용한 혐의다. 이들은 위조 표지어음을 담보로 같은 달 21일 서울 양재동 우리은행 지점에서 47억5000만원을 빼내 미화로 환전해 사용하려 했다. 이들은 은행 재직 당시에도 부정 대출 등을 일삼다 면직 처분을 받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또 김씨 일당과 평소 친분이 있던 현직 은행 지점장인 이씨는 김씨 등에게 위조에 필요한 백지 표지어음 용지 원본을 넘기고 4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추후 100억원대 불법 대출에 성공하면 10억원을 추가로 받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김씨 등은 이씨가 넘긴 백지 어음용지에 컬러 프린트기로 금액을 적었고 일련번호는 약품 처리를 해 원본과 똑같이 바꾼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이씨는 가짜 어음용지를 은행 금고에 넣어두는 수법으로 원본의 유출 사실을 감춘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경찰 진술에서 "빚이 많아 돈이 필요했다. 처음 범행을 제안받았을 때엔 거절했지만 다음엔 10억원을 더 준다고 해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위조 어음으로 쉽게 대출을 받자 또 다른 어음을 위조, 100억 원대의 대출을 받으려 모의하던 중 경찰에 꼬리가 잡혔다. 지난 4월 만기일이 돼 어음 회수를 요청하려던 은행이 이미 돈이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덜미가 잡힌 것. 하지만 빠져나간 돈은 달러로 환전됐고 아직 회수하지 못한 상태다.
경찰은 불법 대출금 47억5천만원 가운데 3억5천만원은 I업체 대표 김씨에게 전달됐지만, 나머지 44억원은 위조 기술자로 추정되는 40대 남성이 모두 챙겨 도망쳤다고 밝혔다.
경찰은 우리은행의 또 다른 직원 2명도 이번 사건에 관여한 정황을 포착해 불구속 수사하는 한편, 도피한 위조기술자 3명을 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