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불량 대출자'가 최근 1년간 80만명 쏟아진 가운데 10명 가운데 2명꼴로 소득이 적은 저신용층에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 가계부채 부실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가장 큰 원인인 가운데 자영업자는 다중채무자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금융기관의 연쇄 부실로 이어질 수도 있어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은행부문 부실로 이어져 구제금융까지 지원받은 스페인식 위기가 재현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정부의 대응이 이미 한 발 늦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지금이라도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면 강력범죄와 이혼이 급증하는 등 사회불안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이스신용평가정보는 가계대출자 1667만6천명의 불량률이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4.78%라고 16일 밝혔다.
이는 금융회사에 빚을 갚지 못하고 불량 대출자가 된 사람이 한 해에만 79만7천명 생겼다는 뜻이다. 한 해 동안 대출자 100명 가운데 5명꼴로 부실차주가 된 셈이다.
불량률은 최근 1년간 채무 불이행으로 은행연합회에 통보되거나 3개월 넘게 원리금 상환을 연체한 대출자 비율이다.
가계대출의 불량률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평균 불량률은 4.67%에서 4.78%로 상승했다.
주로 저소득자가 분포한 신용도 하위등급(7~10등급)은 불량률이 약 18%로, 지난해 3월 말 약 16%에 견줘 1년 만에 2%포인트 상승했다. 또 고소득자 위주의 상위등급(1~3등급) 불량률이 1%를 밑도는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경제연구부문장은 "소득 1분위(하위 20%)는 저축률이 줄곧 마이너스다"며 "빚이 쌓이고 쌓여 채무 불이행으로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저소득층을 대거 불량대출자로 전락하게 한 주범은 주택담보대출의 부실로 주택담보대출 불량률은 평균 2.49%인데 하위등급은 8등급(20.30%), 9등급(29.69%), 10등급(45.90%) 등으로 평균치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선빈 수석연구원은 "고용시장 경색과 자영업자 급증으로 저소득층이 여기저기서 빚을 냈다가 집값 하락의 `폭탄'을 맨 먼저 맞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영업자가 위기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지난달 대출자 6만2천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다중채무자(여러 금융회사에서 빚을 낸 대출자)의 30.6%는 자영업자로 파악됐다.
금융회사 1곳에 빚을 지면 부담률은 18%지만 3곳(23%), 5곳(25%), 7곳 이상(28%) 등 다중 채무가 쌓일수록 부담이 커져 불량이 될 확률이 커진다.
다중채무는 특히 5등급 이하 저신용층에 치명적이라고 자산관리공사는 설명했다.
소득이 받쳐주는 1~4등급은 `4중채무'까지 견딜 수 있지만, 5등급 이하는 여러 곳에서 대출할수록 신용도에 직접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고소득자가 많은 신용도 상위등급은 불량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 1등급 0.09%, 2등급 0.14%, 3등급 0.25%, 4등급 0.48% 등으로 불량률이 1%를 밑돈다.
그러나 저소득자가 분포한 신용도 하위등급으로 가면 불량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져 7등급 7.97%, 8등급 20.30%, 9등급 26.69%, 10등급 45.90%다. 7~10등급의 평균 불량률은 약 18%다.
상위등급은 지난해 말과 비교해도 불량률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지만, 하위등급은 2%포인트 상승했다.
금융감독원은 가계대출 부실이 경기 변동보다 6개월가량 후행(後行)한다고 분석했다. 실물경제의 충격이 대출 부실에 영향을 주는데 6개월 정도 걸린다는 것으로,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리는 만큼 앞으로 부실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올해 들어 경제성장률이 본격적으로 하락해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제기된 만큼 불량대출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부실비율은 지난달 말 0.76%로 분기 말 기준으로 2006년 9월의 0.81% 이후 가장 높았는데 앞으로 부실률이 더 높아질 전망이다.
금감원 이기연 부원장보는 "경제 성장률이 하락하고 부동산 경기가 둔화한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 가계부실이 심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응이 굼뜬 것도 불량 대출자가 무더기로 쏟아진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출자 이자부담을 줄이려고 나섰지만, 금융회사를 압박하는 방식은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 아니라 금융회사의 건전성만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가계부채의 규모를 관리하려다 보니 대출이 늘지 않고, 그 결과 상환 능력이 약한 저소득층부터 부실이 드러나는 `역(逆) 유동성 효과'도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선빈 수석연구원은 `좋은 일자리'가 부족해진 게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고용, 소득 등 거시경제정책이 실패한 탓이라는 얘기다.
김 연구원은 "해고와 은퇴가 늘자 생계형 자영업자가 초과 공급됐고, 영업이 부진하자 집을 담보로 맡겨 생활비를 빌렸지만 갚을 길은 막막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취업자 2천400만명에서 대기업 직원(100만명), 공공기관 종사자(130만명), 안정적 자영업자(200만명) 등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소득이 적거나 불안정하다고 추정했다.
신민영 부문장은 "앞으로 저성장 기조가 지속해 저소득층의 대출 불량 문제도 커질 것"이라며 "범죄와 이혼 등 사회불안 현상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의료서비스, 레저ㆍ여가산업 등 내수를 진작시키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며 정부가 이들 분야의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