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전 세계적인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수익이 급감한 상황에서 금융기관 대출은 물론 회사채나 주식 발행조차 여의치 않아 자금 사정이 갈수록 나빠진 결과, 올해 역대 최다 규모의 중소기업이 구조조정 대상에 오르는 등 세계 경기침체로 인해 국내 중소기업들이 휘청거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이 불황의 직격탄을 맞자 보증료를 멋대로 올리는 관행을 금지하는 등 추가 지원책이 마련되는 등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기업 실적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지는 소규모 유동성 지원은 해당 업체의 구조조정 시기를 늦출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어서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중소기업 1355개(잠정치)를 올해 신용위험 세부평가 대상으로 선정, 금융감독원에 보고했다.
신용위험 세부평가는 대출 등으로 금융권의 신용을 50억∼500억원 끌어다 쓴 중소기업 가운데 위험한 곳을 추려 구조조정 여부를 정하는 제도로, 세부평가 대상에 오른 중소기업은 2010년 1290개에서 지난해 1129개로 12.5% 줄었지만 올해 들어 다시 20.0%나 증가했다.
평가가 정례화된 2009년의 1차 평가(신용공여액 50억∼500억원 외감법인) 대상이 861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 평가 대상은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다.
은행들은 다음 달 말까지 외감법인과 비외감법인에 대한 세부평가를 마치고 이들 중소기업을 A∼D 4등급으로 분류한다. C등급은 워크아웃, D등급은 법정관리에 해당한다. B등급은 패스트트랙(신속 금융지원 제도)으로 회생 가능성을 타진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올해는 예년보다 C등급이나 D등급을 받는 중소기업이 부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건설·부동산, 정보기술(IT), 운송업 등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 구조조정 대상에 여럿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스신용평가정보에 따르면, 운송업(육상 0.0%, 해상 1.2%), 부동산업(3.1%), 종합건설업(3.7%)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중소기업 평균치(4.5%)에 훨씬 못 미쳤다.
내수 경기에 연동하는 전자부품제조업(1.9%), 주택매매 수요와 관련된 가구제조업(2.8%)의 영업이익률도 평균치를 밑돌았다.
자금 사정이 곤란한 중소기업 비중은 지난해 12월 28.0%에서 올해 7월 30.2%로 불어났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같은 기간 1.34%에서 1.76%로 상승했다.
올해 중소기업 신용위험 세부평가 대상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늘어난 것은 경영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나빠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보면 지난 8월 전체 제조업의 업황BSI는 72로 기준치인 100을 한참 밑돌았다.
BSI가 기준치인 100에 크게 미달한 것은 체감경기가 그만큼 나쁘다는 의미가 있다.
중소기업이 느끼는 경기는 더욱 싸늘하다.
중소 제조기업의 업황BSI는 넉 달째 하락해 69까지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5월 이후 최저치다. 대기업 74보다도 5포인트 낮다.
전체적인 경기실적을 나타내는 중소기업중앙회의 중소기업건강도지수 역시 지난달 76.8로 해당 통계를 집계한 2010년 2월 이래 최저치다.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상황도 어려워 자칫 유동성 위기에 빠질 우려가 있다.
3년물 기준으로 중소기업이 주로 발행하는 신용등급 `BBB-'인 회사채 금리는 올해 상반기 평균 9.87%나 됐다. 대기업이 주로 발행하는 `AA-' 등급 회사채 평균 금리(4.16%)의 2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2001년 이후 매년 80% 이상을 유지하던 중소기업의 IPO 비중은 올해 상반기에는 55.6%로 내려앉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으면 재무제표가 예년보다 안 좋게 나오고 신용위험 평가대상 기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취약 업종도 늘어나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대상인 평가등급 C, D 기업이 많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자금 사정이 나빠지자 금융당국은 중소기업 업황이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신용보증기금의 지점장 전결권을 제한하고 보증료를 더 낮추는 등 추가적인 자금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비롯해 중소기업 지원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신보 영업점장의 전결권이 지나치다는 지적에 따라 개선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신보 지점장 전결권의 경우 중소기업의 보증료율을 마음대로 올리는 것을 금지하되 내릴 때는 지점장이 인정하면 0.3%포인트 낮춰주는 방안이 유력하다.
안택수 신보 이사장은 지난달 23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중소기업 보증에서 일선 지점장의 전결권한이 과도하다는 지적을 고려해 가산조정 권한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신보는 또 지난달 30일 태풍 `볼라벤' 등으로 풍수해를 입는 중소기업에 재해 특례보증을 하기로 했다. 중소기업 지원을 활성화할 신규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신보 관계자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지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늦어도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유동성을 지원하면 살아날 수 있는 기업을 특별히 보증해 자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 패스트트랙(신속지원제도)'을 내년 말까지 1년 연장하기로 했다. 중소 건설사엔 8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한다.
금융감독원은 중소기업이 기계와 원자재 등 동산(動産)을 맡기고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동산담보대출 제도를 도입했다.
금융권도 중소기업 지원 움직임에 합류했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신규 설비투자 수요가 있는 중소·중견기업에 1조5000억원씩 총 3조원 규모의 설비투자펀드를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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