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10대 그룹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상장사 전체 영업이익의 70%를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삼성과 현대차 두 개 그룹의 영업이익이 전체 상장사의 50%를 돌파하는 등 재벌 내에서도 양극화가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부 수출 그룹을 제외하면 10대 그룹의 실적도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유럽 재정위기로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가운데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이 있는 삼성과 현대차를 위시한 대기업들이 그나마 이익을 올리면서 영업이익 집중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전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한국이 받은 충격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데는 이들 재벌 그룹의 선전이 큰 도움이 됐다는 긍정적인 분석도 나오고 있지만 갈수록 재벌사들로 경제력이 집중되고 있을 뿐아니라 재벌그룹들 내부에서도 양극화가 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IT, 자동차 등 특정 분야에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지나치게 편중되면서 대외여건에 따라 국가 경제가 심하게 흔들리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독점적 구조에서 대기업들이 하청업체들에 대한 압박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5일 한국거래소와 재벌닷컴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1518개 상장사(12월결산·비금융사제외)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35조605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0% 줄어든 가운데 총수가 있는 자산순위 10대 그룹 소속 83개 상장사(12월결산·금융사제외)의 영업이익은 25조119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3조5955억원보다 6.4% 늘어났다.
이는 유가증권시장 633개사와 코스닥시장 885개를 더한 총 1518개 상장사 영업이익(35조6053억원)의 70.6%에 달한다.
한국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전체 상장사 중 10대 그룹 비중을 추적할 수 있는 2006년 이후를 따져보면, 올 상반기 10대 그룹의 영업이익 비중이 가장 높았다"고 말했다
전체 상장사의 순이익도 33조4549억원에서 28조4842억원으로 14.9% 감소했지만 10대 그룹의 순이익은 0.2% 증가했다.
10대 그룹의 총매출이 전체 상장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상반기 49.9%에서 올 상반기 50.4%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이들 그룹의 영업이익 비중은 57.7%에서 70.6%로 올라갔다.
이들 10대 그룹의 영업이익 비중은 연간기준으로 2006년에 46.3%에 머물렀으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 68.5%로 치솟았고 올해 상반기 유럽 재정위기가 본격화되면서 70%까지 넘어섰다.
또 10대 그룹 내에서도 양극화 추세가 뚜렷해져 삼성과 현대차 두 개 그룹의 영업이익이 전체 상장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반면 다른 그룹들은 부진을 면치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그룹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11조606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7조2653억원보다 59.8%나 늘어났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 영업이익이 전체 상장사에 차지하는 비중도 17.8%에서 32.6%로 무려 14.8%포인트나 상승했다.
현대차그룹의 영업이익은 5조6992억원에서 6조4153억원으로 12.5% 늘었고, 비중은 14.0%에서 18.0%로 4.0%포인트 올라갔다.
이에 따라 이들 두 개 그룹이 전체 상장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1.8%에서 50.6%로 올라갔다.
하지만 삼성·현대차그룹을 제외한 LG그룹(-4.5%), SK그룹(-31.3%), 롯데그룹(-37.5%), 현대중공업그룹(-49.4%), GS그룹(-47.8%) 등 나머지 8개 그룹은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줄어들었고 한진그룹은 2588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10대 그룹의 선전이 재정위기 극복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KDB대우증권 구용옥 연구원은 "냉정히 보면 외부충격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생겼다는 점에 의미를 둘 필요가 있다"면서 "그나마 그런 기업이 없었다면 한국경제가 상당히 많이 가라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0대 그룹의 선전이 독점적 구조에서 나온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숙명여대 경제학과 유진수 교수는 "재벌 전체가 좋았다기보다 특수한 몇 개 계열사가 좋은 결과를 낸 것인데 이것이 높은 경쟁력 때문인지, 아니면 근로자와 거래기업을 압박한 결과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 이기웅 간사는 "독과점 시장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재벌들이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불황이든 호황이든 이익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확고히 했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지금과 추세가 지속할 경우 IT, 자동차 등 일부 수출 산업에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지나치게 편중돼 대외의존도가 더욱 높아지면서 대외여건 변동에 따라 국가경제 전체가 춤을 추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고 대기업의 `사익추구'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기웅 간사는 "10대 그룹 내에서조차 양극화가 나타나면서 하청업체에 대한 수탈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영여건이 나빠진 만큼 하청업체 단가 후려치기 관행과 중소기업 기술 빼가기 등의 행태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간사는 "상대적으로 큰 기업에 대한 경제력 집중이 계속 심해지는 것이 문제"라며 "재벌의 경제규모 확대가 어느 정점에 올라 성장도, 고용도, 수익분배도 제대로 안 되는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 만큼 지금부터라도 점진적 분할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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