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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술무역수지배율 OECD `꼴찌'… "기초과학 무시결과"

[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기술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기술무역에서는 매년 적자를 기록하는 등 기술경쟁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일본, 영국, 독일 등은 누적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기술무역에서 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첨단 제품 생산의 핵심 기술이 부족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가 진정한 과학기술 부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창조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일 OECD와 금융투자업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 2010년에 한국의 기술무역수지배율은 0.33으로 통계가 확보된 OECD 25개국 중 최하위다.

기술무역수지배율은 기술 수출액을 기술 수입액으로 나눈 것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국가의 기술경쟁력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기술 수출액은 33억5000만달러로 수입액(102억3400만달러)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아 원천기술 보유에서 열세를 드러내고 있다. 반면에 기술 도입을 위해 외국에 지난해 전년보다 21.3% 늘어난 102억3400만달러를 지불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주요 선진국들은 기술무역에서 강세를 보였다.

배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일본으로 무려 4.60을 나타내 우리나라의 14배에 달했다.

세계 최고의 기술 수출국인 미국의 배율은 1.46으로 한국보다 4.4배였다.

기술 무역규모가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작은 에스토니아를 제외하면 노르웨이(2.07)의 배율이 일본에 이어 2위였고 스웨덴(1.98), 영국(1.81), 오스트리아(1.57), 미국(1.46), 독일(1,21) 등이 뒤를 이었다.

게다가 한국이 기술무역수지배율을 2000년 0.07에서 2010년 0.33으로 올리는 동안 일본은 2.39에서 4.60으로, 노르웨이는 1.61에서 2.07로 각각 상승해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최하위 그룹은 슬로베니아(0.49), 그리스(0.52), 이탈리아(0.62), 슬로바키아(0.66) 등이었지만 우리나라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한국은 주요국과 비교해 기술무역 규모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수출에서 규모 차이가 더 컸다.

기술 수출액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으로 2010년 964억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이어 독일 553억8000만달러, 영국 436억8000만달러, 아일랜드 410억3000만달러, 일본 277억6000만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의 수출액과 비교하면 미국은 29배에 달했고 독일은 16배, 영국은 13배, 일본은 8배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IT,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한국의 `응용기술' 경쟁력은 높아졌지만 `원천기술'이 부족한 탓에 기술 대외 의존도가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손민선 책임연구원은 "한국의 IT 산업이 성장세에 있지만 응용기술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원천기술에 대한 지출이 크다"며 "원천·표준특허를 확보하고 로열티 수입을 늘리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한국은 IT 기술은 미국에서, 기계 관련 기술을 일본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며 "기초 과학을 소홀히 해 원천기술 보유에서 약세를 보인 것이 이 같은 결과로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일부 국가에 대한 의존도 역시 심하다.

우리나라는 전체 기술 도입 금액의 57.4%인 58억7000만달러를 미국에 제공하고 있다. 이는 전년보다 23.4% 증가한 규모다.

이어 일본에 12억6천만달러(12.3%), 아일랜드에 4억3천만달러(4.2%), 독일에 4억1천만달러(4.0%), 영국에 3억8천만달러(3.7%)를 각각 지불, 5개 국가에 전체 기술 도입 금액의 81.7%가 집중됐다.

반면에 이들 5개국에 한국이 기술을 제공하고 받은 금액은 16억9천만달러로 전체 수출액 33억4천500만달러 중 50.4%에 그쳤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기술 무역수지는 68억8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투자전략팀장은 "한국은 원천기술 개발보다 특허권을 사들여 재가공하는 데 집중하면서 기술무역수지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선진국처럼 기술을 종합적으로 보호·육성할 수 있는 통합 기관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기술무역수지배율이 OECD 평균에 비해 크게 낮은 점을 지적하면서 창조적인 과학자 육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도계훈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조사분석실장은 "그동안 추격형 산업구조에서 기술 모방이 많았으며 원천기술과 장기안목 부족으로 지적재산의 활용과 관리도 부진했다"며 "선도형 산업구조로 변화해 창조적으로 이끄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도적, 행정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성과 지향적 문화를 지양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문화가 필요하다"며 "선진국처럼 제조뿐만 아니라 연구분야에서도 장인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최근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세계시장에서 약진하고 있지만 혁신과 창조 측면에서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기업혁신 분야 순위는 작년 14위에서 올해 16위로 2계단 하락했는데, `기업 혁신능력'(19위), `기업의 연구개발(R&D) 지출'(11위), `과학연구기관 수준'(24위), `과학자 및 기술인력 확보 용이성'(23위) 등 이 항목에 속한 주요 순위가 대체로 선진국 수준과는 차이를 보였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제경쟁력 평가에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약점으로 지적됐다.

관련 인프라 수준을 평가하는 종합 순위에서는 과학경쟁력은 5위, 기술경쟁력은 14위였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법적 환경이 과학적 연구를 지원하는 정도'에서 전년보다 4계단 떨어진 31위를 기록했다.

`지적재산권의 보호 정도'(31위)도 순위가 낮았으며, `과학연구 수준이 국제적 기준보다 높은 정도'는 21위로 뒤처졌다.

전문가들은 대량생산을 통한 원가절감 등을 통해 경쟁업체를 빠르게 따라잡은 `추격자(fast-follower)'였던 한국 기업들이 혁신능력을 강화해 `선도자(first-mover)'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