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전재민 기자] 휴대전화만 있으면 통장 잔고 내에서 결제가 가능한 기존의 신용·직불카드를 대체할 새로운 방식의 결제수단이 올해 말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는 두꺼운 지갑 대신 휴대전화만 있으면 결제를 할 수 있어서 편의성이 크게 향상된다.
가맹점도 별도의 기기를 들여놓을 필요가 없어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없다.
특히 이 결제수단이 나오면 가맹점 수수료를 대폭 낮출 수 있어 신용카드 위주의 결제시장 판도를 바꿀지 주목된다.
신용카드 업계로서는 수수료율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결제시장의 주도권을 내주고 뒤로 밀려날 수도 있어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바짝 긴장하고 있다.
당국은 전자직불결제가 활성화되면 직불결제를 늘리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7일 금융위원회와 전자금융업계에 따르면, 바코드나 자동응답전화(ARS) 등을 이용해 카드 없이 전화번호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만으로 통장 잔고 내에서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는 새로운 전자 직불결제서비스가 연내 시행될 예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서비스 시행을 위한 기술은 이미 완비된 상태"라며 "오는 11월6일 관련 법 개정을 완료하면 곧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결제방식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별로 다양한데, 주로 바코드와 ARS를 이용해서 이뤄진다.
바코드 기반 거래는 고객이 스마트폰에서 앱을 내려받아 자신이 보유한 통장계좌번호와 연결한다. 앱을 작동하고 비밀번호를 넣으면 바코드가 화면에 생성되고 이를 계산대의 바코드 입력기에 읽히면 그 자리에서 직불결제가 이뤄진다.
ARS 기반은 고객이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하고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결제 시 미리 등록된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가 온다. 이때 휴대전화를 받아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통장에서 자동으로 결제금액이 빠져나가게 된다.
가입 시 본인인증은 공인인증서로 대체하도록 했다. 그동안은 전자직불지급수단을 발급받으려면 금융회사 창구를 방문해야 해 번거로웠다는 지적을 반영했다.
새 결제수단의 가장 큰 장점은 편의성으로, 새 결제수단이 일반화되면 소비자는 지갑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게 된다.
당국으로서는 직불결제가 늘어나니 환영이다. 2010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신용카드 이용 비중은 41.4%로 미국(15.2%), 영국(8.1%)보다 훨씬 높다.
'있는 만큼 쓰는' 직불결제가 활성화하면 가계의 카드빚 문제에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소액결제 부문에서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맹점 수수료를 카드사보다 대폭 낮출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업체 관계자는 "카드 발급비용이 들지 않고 직불결제라 연체 우려가 없기 때문에 카드사에 비해 가맹점 수수료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업체들은 가맹점 수수료율을 현재 카드사와 대형가맹점 간 평균 수수료율인 1.5%보다도 낮게 책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수료가 싼 직불결제가 늘어나면 입지가 줄어든 신용카드사는 수수료를 낮추란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높은 편의성에도 지금까지 이런 서비스가 시중에 나오지 못한 것은 현행 전자금융감독규정상 고객이 직접 은행창구를 찾아가지 않으면 직불전자지급수단 발급을 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전자·통신기술의 발달로 전자금융거래가 급증한 만큼 제도가 기술력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법 개정을 추진, 새로운 서비스가 나올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현재 당국과 업체는 결제가능금액을 두고 이견을 조율 중이다.
금융위는 도난이나 해킹 등 보안상의 이유로 결제가능금액을 30만원으로 설정했지만, 전자금융업체들이 서비스의 활성화를 위해 이를 상향해달라고 요구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업계에서 한도액을 50만원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며 "휴대전화는 분실 우려가 커 적정한 결제 상한선이 어느 수준인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결제수단은 최근 일부 은행·통신사 등이 추진하는 전자지갑 근거리무선통신(NFC) 등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
금융위 관계자는 "새 직불결제수단은 카드사를 배제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간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가 카드사를 중간에 끼고 수수료를 지급하는 형태였다면 이젠 신용카드 없는 결제를 확산하겠단 것이다.
전자금융업체(PG)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이니시스, 다날 등 온라인 결제 강자들이 오프라인으로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결제시장의 지각변동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카드업계는 아직 서비스 시행 전인만큼 일단 지켜본다는 입장이지만 수익원을 빼앗길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직불카드 가맹점이 10만 곳에 불과하고 소비자 입장에서 생소한 개념이라 얼마나 상용화될지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큰 위협이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낮은 수수료와 높은 편의성으로 무장한 새로운 서비스가 상용화되면 카드업계의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특히 스마트폰을 많이 쓰는 젊은 층(20대)의 신용카드 이용액은 지난해 4분기부터 계속 줄어드는 상태다.
금융위는 카드업계의 입장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단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카드업계로서는 달갑지 않을 수 있겠지만, 직불결제수단 활성화와 금융소비자 편의 증진 등을 위해 막혀 있는 규정을 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새 결제수단의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우리나라 모바일 결제 서비스는 10년 전인 2002년 SK텔레콤의 '모네타'부터 시작됐지만 모두 실패했다.
가장 큰 장벽은 소비자다. 그동안 카드를 사용하던 습관을 하루 아침에 끊기 어렵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이윤하 선임연구원은 "사람들은 주 사용 결제수단이 있어 습관적으로 그 결제수단을 꺼내 물건을 구입한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