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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기부 자사출연재단에 다시 집중… 재벌공익재단 `경영권 보호수단' 전락 우려도

[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대기업들의 기부 금액이 최근 5년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가운데 이들 기부금의 40%는 해당 기업이 지분을 출연한 재단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재벌 총수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공익재단의 활동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재단이 정부에서 손대지 못하는 영역을 대신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지분 출연과 운용 면에서 순수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경영권 보호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익재단 운영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대기업들도 재단 악용 의혹을 방지하기 위해 기부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26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에 따르면, 전경련이 국내 매출액 상위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집계한 결과, 국내 대기업의 사회공헌비용은 2005년 1조4055억원에서 2010년 2조8735억원으로 증가했다.

매출액 대비 사회공헌 비용은 0.2% 수준으로 큰 차이가 없었지만 경상이익 기준으로는 같은 기간 2.0%에서 3.2%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기부금은 같은 기간 7410억원에서 1조2515억원으로 증가했다.

기부액이 사회공헌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2.8%에서 43.6%로 감소했다.

기업들의 기부금은 많이 늘어났지만 자사출연 재단으로의 기부 비중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4∼2010년 기업들의 기부금액 중 평균 40.6%가 자사 출연재단에 집중됐고, 이어 주요 모금단체(14.6%), 비정부기구(NGO), 국가지방자치단체(14.6%) 순으로 나타났다. 기타는 23.3%였다.

자사출연 재단으로의 기부 비율은 2005년까지 50%대를 웃돌다가 점차 감소해 2009년 22%까지 떨어졌지만 2010년 37.6%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재벌 소속 재단으로의 기부 편중은 일반 공익법인과의 양극화를 가져올 수 있다.

또 주식 출연 방식의 기부는 경영권 강화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어 `기부 몰아주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오덕교 연구위원은 "기업의 지분을 보유한 재단에 주는 것은 순수한 기부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라며 "공익재단이 대기업들의 기부를 보편화했다는 순기능이 있지만 여전히 우호지분으로서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편인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해 12월 재벌 소속 45개 공익법인을 조사한 결과, 30곳에서 보유 주식의 90% 이상을 계열사 주식 형태로 보유했다.

일각에서는 재벌 공익재단 중 상당수가 주식형태로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실제 기부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재단이 자산을 유지하면서 공익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려면 수익사업이나 적극적인 자산운용이 필요하지만 대다수 재단이 주식 배당금에 의존하고 있는 것.

특히 일부 재단은 막대한 주식규모에 비해 배당금액이 극히 적어 보유주식이 공익사업 재원으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해 12월 재벌 소속 45개 공익재단을 분석한 결과, 보유 주식자산에 대한 평균 배당률은 1.59%에 불과했다. 총자산 대비 계열사 주식 평균비율은 약 29%였고 45곳 중 30곳은 보유 주식의 90% 이상을 계열사 주식 형태로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바른사회공헌포럼 김성호 공동대표는 "대기업이 자사 재단에 기부한 주식의 배당이 거의 없다면 기부 목적이 공익이 아니라 경영권 보호수단 또는 변칙적 증여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재벌 공익재단이 현재의 비판에서 벗어나려면 외부 공익단체와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재단 운영의 투명성을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증명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연세대 경제학부 박태규 교수는 "재벌 소속 공익재단들이 의견을 널리 구하고 외부단체와 적극적으로 협력해서 사회공헌사업을 투명하게 집행할 필요가 있다"라며 "출연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사후관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 연구위원은 "기업들은 관계 재단으로의 기부보다는 기부 취지에 맞는 외부 공익단체로의 기부가 일반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현재 기부 전반에 관해 체계적으로 다루는 법률이 없는데 법적 내용을 총망라하고 정비해 기본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경실련 권오인 팀장은 "교육, 사회복지 등 재단의 성격이 따로 정해져 있지만 공시만 봐서는 어떤 사업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면서 "재단에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이 투명하게 공시되도록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애초 재단이 지배권 강화에 악용된다는 의심을 받지 않도록 주식 대신 현금형태로 기부받거나 매년 주식 일부를 현금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성호 공동대표는 "외부적으로는 거창하게 기부한다고 발표하면서 실제로는 공익목적으로 사용되는 돈이 극히 일부인 경우가 있다"면서 "진정성을 보이려면 주식으로 기부할 때 반드시 일정액을 현금화해 공익 목적으로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