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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재벌 부채 1000조 육박… 웅진 부채증가율 1위

[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0대 재벌그룹의 차입금이 급증하면서 부채 총액이 1000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채비율이 200%가 넘는 그룹도 10개에 달했다.

특히 최근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에 대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며 시장에 큰 충격을 준 웅진이 부채 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

재계는 이 같은 부채 증가와 관련,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계열사를 확대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웅진사태의 결정적 원인이 무리한 사업 확장에 따른 부채 급증이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중하위권 재벌그룹 중 일부는 재무건전성이 심각한 수준임에도 계열사를 무리하게 늘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8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자산 순위 30대 재벌그룹의 2009~2011 회계연도 기준 재무현황을 살펴본 결과, 작년 말 현재 부채 총액은 994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는 2011 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서 집계된 한국 중앙정부의 부채(402조8000억원)의 2배가 넘는 액수다.

30대 재벌그룹의 부채 총액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772조3000억원, 2010년에는 857조3000억원이었지만 불과 불과 2년 사이에 221조9000억원(28.7%)이 증가하면서 지난해말 1000조원에 근접했다.

30대 재벌그룹 가운데 부채총액 증가율이 가장 높은 곳은 웅진이었다.

웅진그룹은 차입금이 2009년 1조5000억원에서 작년 말 4조3000억원으로 186.7% 증가하면서 부채총액도 3조9000억원에서 7조2000억원으로 2년 사이에 무려 84.7% 급증했다.

부채총액 증가율 2위는 CJ그룹으로, 이 그룹의 부채는 2009년말 6조4000억원에서 작년 말 11조1000억원으로 73.8% 늘었다.

또 LG(56.1%), 현대차(53.6%), 효성(52.7%), 미래에셋(52.6%), 롯데(50.6%) 등의 그룹도 이 기간 부채가 50% 이상 증가했다.

타인 자본에 대한 의존도를 보여주는 부채비율 역시 일부 그룹에서 높게 나타났다.

작년 말 현재 부채 총액이 자기자본의 2배가 넘는 그룹(부채비율 200% 이상)은 30대 그룹 중 10곳에 달했다.

동양(885.5%), 동부(509.4%), 한화(473.3%), 미래에셋(394.0%)의 부채 비율이 높았으며, 웅진그룹은 9번째인 217.6%였다.

웅진은 2009년도 130.0%였던 부채비율이 2011년 217.6%로 수직 상승했다.

동양은 2009년도 774.9%에서 2011년 885.5%로 부채비율이 높아지면서 증가폭이 30대 그룹 가운데 최고치인 110.6%포인트에 달했다.

한진과 효성의 부채비율도 각각 94.1%포인트, 87.7%포인트 올라갔다.

반면, 30대 재벌그룹 중 부채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영풍(32.3%), 현대백화점(39.7%), KCC(57.8%), 롯데(86.4%) 등으로 조사됐다.

30대 재벌그룹의 차입금과 부채총액이 급증한 이유는 대형 인수·합병(M&A) 등 사업확장과 경기 부진에 따른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차입금을 크게 늘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금융위기 이후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SK그룹이 SK하이닉스를, 롯데그룹이 하이마트를 각각 인수하는 등 대형 M&A가 이어지면서 계열사도 2009년 983개사에서 작년 말 1165개사로 18.5%(182개) 증가했다.

재계 서열 12위인 CJ는 부채총액 증가율(73.8%포인트)이 30대 재벌그룹 중 두 번째로 높은데, 지난 2년간 총 19개의 계열사를 늘렸다.

30위 동양과 16위 동부는 2011년도 부채비율이 각각 885.5%, 509.4%로 30대 그룹 중 가장 높은 수준인데, 이들 역시 2009년∼2011년 사이 계열사를 각각 10개, 16개 늘렸다.

다만 롯데는 2009년∼2011년 사이에 계열사를 21개 늘려 30대 재벌그룹 중 계열사 증가 폭이 가장 컸지만 재무건전성이 좋은 편이었다.

재벌닷컴 정선섭 대표는 "중소기업들은 자금난에 허덕일 때 재벌 그룹들의 계열사 확장은 부채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최정표 교수는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응하고자 재벌그룹들이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차입금을 늘리고 있지만 빚으로 확보한 유동성은 나중에 더 큰 부담이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런 상황이라면 제2의 웅진사태가 터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웅진 보다 자산규모가 큰 재벌그룹이 무너진다면 국가 경제적으로 충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는 현재 기업부채 수준이 시장의 허용는 범위에 있으므로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기업정책팀 이철행 팀장은 "기업이 자금을 빌리고 싶다고 상환 능력을 벗어나 무한대로 차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업은 갚을 능력이 있기 때문에 돈을 빌렸고 금융권도 해당 기업에 빌려줄 만하니 빌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또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때 기존 기업에 사업부를 만들어 사업을 추진하는 것보다 계열사를 통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재무적 위험도 적다"며 "계열사를 만들지 않으면 적극적인 사업 추진이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존 회사를 인수합병하는 형태가 아니라 새로운 회사를 만드는 방식으로 계열사를 늘리면 해당 계열사의 사업이 안정화되기까지 약 5∼10년이 걸린다"면서 좀 더 장기적 시각에서 계열사 확대를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정재규 박사는 "인수합병 등을 통한 계열사 확대는 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물색하는 방식이므로 일방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면서도 "어떤 명분이든 부채의 규모를 키우면서까지 계열사를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