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시행된 한국은행의 총액한도대출 제도가 은행의 배만 불리고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시중은행들이 한은에서 저리에 빌린 자금에 과다한 가산금리를 붙여 일반대출 금리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가 하면 총액한도대출을 대기업에 편법으로 대출하는 사례도 많았다.
9일 한은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정성호(민주통합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은행 창구에서 총액한도대출 가운데 '기업구매자금대출' 금리는 연 5.92%로 중소기업 대출의 총 평균 금리인 5.81%보다 0.11%포인트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총액한도대출이란 중소기업 대출을 장려하기 위해 시중 금융기관의 중소기업대출 취급 실적을 기준으로 한은이 저리(연 1.5%)의 대출 자금을 은행에 지원하는 제도다.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취급실적에 따라 연 1.5%의 낮은 이자로 한은에서 돈을 빌려 중소기업에 빌려주면 되는데, 2010년 은행의 수신금리가 2.85%였던 것을 감안하면 절반에 돈을 빌릴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실제 은행 창구에서 판매하고 있는 총액한도대출 중 중소기업을 위한 '기업구매자금대출' 금리는 연 5.92%였다.
이는 한은이 은행에 공급하고 있는 총액한도대출의 원래 금리인 연 1.5%보다 무려 4.42%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은행이 이 제도를 악용해 1.5%에 빌린 돈을 최대 4.42%포인트의 가산금리를 붙여 5.92%에 대출해주며 마음껏 자신들의 배를 불린 것이다.
정성호 의원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도입된 총액한도대출 정책이 은행의 배만 불리고 있다"며 "총액한도대출 정책의 도입 취지가 왜곡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에 대출해야 할 총액한도대출을 대기업에 편법으로 빌려주는 사례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 은행이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총액한도대출을 대기업에 대출해준 금액 규모는 총 1415억원에 달했다.
또 은행이 총액한도대출을 대기업에 활용하다가 적발돼 한도감축을 당한 것이 2009년 57억원, 2010년 40억원에서 지난해 912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올해도 상반기까지 52건, 398억원에 달한다.
정성호 의원은 "중소기업이 실제 혜택을 보려면 한국은행은 은행 관리감독을 더 철저히 해야 한다"며 "총액한도대출 제도를 재정·기금 융자 사업으로 개편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같은 당 이낙연 의원도 이날 국정감사 질의서를 통해 "총액한도 대출의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