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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물리학상 '양자물리학 실험 새시대 연' 프랑스 아로슈·미국 와인랜드

[재경일보 박우성 기자] 올해 노벨 물리학상이 양자 물리학에서 획기적인 실험 기법을 개발한 프랑스의 세르주 아로슈(Serge Haroche·68)와 미국의 데이비드 와인랜드(David Wineland·68)에게 돌아갔다고 AP·dpa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9일 두 사람을 수상자로 발표했다.

노벨위원회는 "개별 양자 미립자를 파괴하지 않은 채 직접 관찰하는 기법을 시연함으로써 양자 물리학 실험의 새 시대를 열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노벨 위원회는 "개별 양자계(individual quantum systems)의 측정 및 조작을 가능하게 하는 획기적 실험 기법을 개발했다"고 이들의 업적을 소개했다.

또 이들이 개발한 기법으로 인해 양자 물리학에 기반한 새로운 형태의 초고속 컴퓨터 개발의 첫걸음을 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어 이들의 연구가 현재의 세슘시계에 비해 100배 이상의 정확도를 가진 시계의 개발을 이끌었다며 "이는 시간의 새로운 표준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두 물체가 완전히 떨어져 있더라도 하나의 물체에 영향을 주는 인자들이 다른 물체에 영향을 준다는 이른바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을 전공한 아로슈와 와인랜드는 양자역학적 시스템을 실험적으로 측정하고 조작하는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연구는 현재 유아기에 있는 양자 컴퓨터(quantum computer) 개발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과 0의 두가지 형태, 즉 2진법 비트로 정보를 저장하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양자 컴퓨터는 이른바 `큐비트'로 불리는 양자비트 하나로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표시할 수 있어 기존 컴퓨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계산능력을 갖게 된다.

때문에 양자 컴퓨터는 기후변화 모델 가동, 암호해독처럼 엄청난 양의 자료를 고속으로 처리해야 하는 작업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아로슈와 와인랜드는 연구 방향이 원자(혹은 이온)-광자(빛의 입자)로 이뤄진 매우 단순한 양자역학적 시스템을 측정하고 조작한다는 면에서 똑같지만 연구 대상으로 삼은 시스템이나 측정 방식은 서로 반대 방향에서 접근한 것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와인랜드 박사는 이온(혹은 원자)을 가둬 놓은 상태에서 빛(레이저)을 이용해 측정·조작을 했고, 아로슈 교수는 초정밀 거울을 이용해 빛 입자 하나를 '덫'에 가둬 놓은 상태에서 원자를 이용해 측정·조작을 했기 때문이다.

콜레쥬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와 프랑스 파리 고등사범학교(ENS)에 재직중인 아로슈 교수는 빛의 입자, 즉 광자 하나를 가두어 두고 조작하고 측정하는 연구를 했다.

아로슈 교수는 단일 광자를 덫에 가두기 위해 매우 정밀도가 높은 거울을 만들어 빛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여기에는 초전도(superconducting) 기술과 초저온 냉각 기술이 쓰였다.

이런 방식으로 '덫에 갇힌 단일 광자(single photon in a trap)'를 만든 후 이 광자의 상태를 연구하는 데는 원자가 사용됐다. 원자 중에서도 그 속의 전자 중 일부가 매우 에너지가 높은 들뜬 상태(excited state)로 돼 있는 '리드베리 원자(Rydberg atom)'를 이용해 이 원자와 광자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살핀 것이다.

미국 상무부 산하 국립표준기술연구원(NIST)에 재직중인 데이비드 와인랜드 박사는 미국 콜로라도 볼더에 있는 NIST 물리학 연구소에서 37년간 꾸준히 양자 광학 분야를 연구한 대가다.

그는 레이저를 이용해 절대 영도에 가까운 초저온으로 이온을 냉각하는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며, 그가 속한 연구 그룹은 2001년 이 기술을 이용해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시계'를 만들기도 했다.

레이저를 이용해 수은 이온 단 하나를 초저온으로 냉각시키고 가두어 둔 후 이를 갖고 지금까지 인간이 할 수 있었던 가장 정밀한 시간 측정을 한 것이다.

그는 또 이 레이저를 이용한 이온 냉각 기술을 이용해 '양자 컴퓨팅'(quantum computing), 즉 양자역학적 현상을 이용해 데이터를 처리하는 계산 기술을 연구하는 분야를 창시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분야는 암호 해독 기법 연구 등 여러 다른 분야에 응용되고 있다.

와인랜드 박사의 레이저 기반 이온 냉각 기법을 기반으로 해 중성 원자 냉각 포착법을 개발한 미국의 스티븐 추, 윌리엄 필립스와 프랑스의 클로드 코엔-타누지는 1997년 노벨상을 이미 받았다.

아내와 귀가중에 수상 소식을 들었다는 아로슈는 "나는 후보의 하나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며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 이어 친한 연구 동료들에게 전화로 수상 소식을 알렸다고 소개한 뒤 "너무 기쁘고 놀랍다"며 "집에서 샴페인 한 잔을 마실 것이고, 그런 뒤에는 연구실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모로코 태생인 아로슈는 1971년 파리 제6대학(Universite Pierre et Marie Curie)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현재 파리의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재직중이다.

미국 밀워키 출신인 와인랜드는 1970년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땄으며, 현재 콜로라도주 볼더에 있는 미국표준기술연구소(NIST)에서 연구원으로 몸담고 있다.

시상식은 노벨상 창시자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오는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부문별 수상자들에게 주어지는 상금은 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 1000만 크로네(한화 약 17억원)였으나, 금융위기 때문에 올해에는 800만 크로네(13억여원)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