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정부의 수출기업 지원 무역금융 제도를 악용해 100억대의 대출금을 불법으로 가로챈 사기범 일당 100여 명이 적발됐다.
경찰은 사기범 일당의 대출 과정에서 시중은행들이 대출심사를 부실하게 했는지도 함께 수사할 방침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부실기업이나 유령업체의 수출실적과 재무제표 등을 위조해 무역보험공사의 '수출신용보증제도'를 이용, 은행들로부터 무역금융 대출 102억원을 불법 대출 받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로 총책 이모(64)씨 등 10명을 구속했다고 24일 밝혔다.
또 은행 브로커 임모(59)씨 등 67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도주한 사기범 일당 26명에 대해서는 행방을 추적 중이다.
이번 수사로 적발된 대출 사기단은 8개 조직, 103명에 달한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5년 2월부터 2009년 말까지 60여개 업체의 재무제표 등 세무서류를 위·변조하고 세관에 허위 수출신고를 하는 등 수출실적을 부풀린 뒤 무역보험공사의 수탁은행 등에 관련서류를 제출, 수출신용보증을 받아 시중은행에 제출해 건당 5000∼2억5000만원씩 총 102억원 상당을 대출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수출신용보증제도는 무역보험공사가 중소 수출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외국환취급은행과 업무협약을 맺고 수출신용보증서 발급업무를 은행에 위임해 대출을 보다 편리하게 받게 한 제도다.
조사 결과, 이들은 부실업체의 의뢰를 받거나 직접 유령업체를 설립한 뒤 화물운송업체와 결탁해 보따리상을 모집해 이들의 물품을 마치 자신들이 일본, 중국 등으로 수출하는 것처럼 꾸미고 결제대금 관련 서류도 갖추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과정에서 은행들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도 드러났다.
수출신용보증제도는 대출 사고시 무역보험공사와 은행이 8대2로 책임을 분담하도록 돼있는데, 은행들은 이씨 일당이 대출을 요청할 경우 대출사고에 따른 은행 손실 책임분 20%를 은행에 다시 예치하는 소위 ‘꺾기’ 관행을 요구했다. 대출 사고가 발생해도 은행은 손실 책임분에 대한 금전적 부담을 줄일 수 있고 나머지 대출금액의 80%는 국고로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씨 등은 대출 이후 6개월정도 이자를 내다가 이후 잠적해 대출상환을 하지 않았고 은행은 이를 대출사고로 판단, 무역보험공사로부터 보증금을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조작된 서류까지 모두 확인된 건만 100억원이 넘고, 실제 피해액은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은행들은 대출심사와 현지실사 등을 형식적으로 진행했을뿐 아니라 손실책임분을 대출자로부터 미리 확보해놓아 결과적으로 무역보험공사만 사고 책임을 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무역보험공사는 수출신용보증제도를 이용한 대출사기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지난해 제도 폐지 논의를 시작해 지난해 11월부터는 신규대출을 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대출규모가 큰 4개 지점을 상대로 대출심사과정이 적절했는지를 살피는 한편 이들의 명단을 무역보험공사 측에 넘겨 지급된 보증금이 회수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