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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기조에 보험사 표준이율 8년만에 전면개편… 보험사 경영난 고객에 전가?

[재경일보 전재민 기자] "경영 어려움 고객에게 전가" vs "장기적으론 고객도 유리"

금융당국이 보험료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표준이율 구조를 8년 만에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표준이율 전면개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번 조치는 표준이율이 금리변동성에 맞춰 좀 더 탄력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 보험사의 건전성을 강화함으로써 추후 보험료를 지급할 때 무리가 없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나왔다.

특히 표준이율을 낮추는 쪽으로 개편돼 보험료를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있다.

이는 저금리 기조 속에서 이대로 가면 보험사가 역마진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한 일종의 고육지책이지만 표준이율을 내리면 보험료가 올라가 소비자 부담을 가중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표준이율이 8년 만에 전면개편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표준이율이 현재의 연 3.75%보다는 낮아지도록 계산식 개편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되도록 연말까지 결론을 내되, 적용시기는 보험회사 회계연도가 시작하는 내년 4월 이후가 유력하다.

표준이율이란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주려고 확보한 돈(책임준비금)에 붙는 이율이다. 보험사가 준비금을 운용해 얻을 것으로 금융당국이 예상하는 수익률이다.

표준이율은 매년 `표준이율 기준금리' 3.5%에 안전계수와 10년 만기 국고채 등 시장금리를 반영해 결정된다.

이 수식대로 하면 현재 보험회사 표준이율은 3.75%, 새로운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내년 4월 표준이율은 3.5%가 된다. 이는 보험사가 책임준비금을 운용해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익률이 3.5%라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 보험사가 자산운용으로 얻는 실제 수익률은 한참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보험사는 자산을 주로 안정적인 채권에 투자하는데, 최근 시장금리의 하락으로 자산운용 수익률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지난 2일 기준 국고채 3년물 수익률은 2.78%, 5년물은 2.84%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불황으로 3% 미만의 저금리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3.5%의 표준이율을 적용받는 보험회사는 적어도 0.5%포인트의 역마진이 날 수밖에 없다.

저금리가 장기화해 이런 구조가 20~30년 이상 이어져 보험사의 자산운용 수익률이 더 낮아지면 보험사는 실제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때 과도한 `이차(利差·수익률 차이) 역마진' 부담을 떠안게 되고, 자칫 보험금으로 줄 돈이 모자랄 수 있다. 중소형 보험사는 도산할 수도 있다.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능력을 보여주는 위험 기준 자기자본(RBC) 비율이 당국의 권고 기준인 150%에 걸쳐 있는 보험사가 여럿 있다.

손해보험사 가운데 롯데손보가 148.5%로 기준선에 미달했다. 에르고다음(159.6), 흥국화재(167.1%)는 기준선을 간신히 넘겼다.

생명보험사는 카디프생명(162.5%)이 기준선을 소폭 초과했다. 하나HSBC는 162.3%의 RBC 비율을 250%대로 끌어올리려고 지난 8월 500억원 증자를 단행했다.

표준이율 산정방식의 변경은 이런 가능성에 대비해 보험사의 건전성을 미리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검토되고 있다.

현재로는 표준이율 산출에 쓰이는 `표준이율 기준금리'와 시장금리(10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의 적용 방식을 조정하거나 계산식 자체를 새로 만드는 등의 방식이 거론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표준이율은 저금리 기조와 괴리가 크다"며 "이대로 두면 머지않아 보험사가 심각한 역마진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보험금 재원이 부족해질 우려가 있다"며 "이 때문에 단순히 특정 부분만 손대는 게 아니라 계산식 전반을 다시 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5년 표준이율 기준금리가 4.0%에서 3.5%로 낮아지고 계산식을 바꾸는 등 개편이 단행됐으며, 2010년 표준이율에 반영하는 시장금리를 회사채 3년물에서 좀 더 안정적인 국고채 10년물로 조금 수정했다.

이번 개편은 사실상 8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일단 표준이율 기준금리를 3.5%보다 낮춰 현실화하는 방안이 고려된다.

표준이율이 하락하면 보험사는 준비금을 늘려야 한다. 보험사는 준비금을 더 쌓아야 하는 만큼 보험료 책정에 쓰이는 예정이율도 내릴 개연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표준이율 하락은 예정이율 하락과 보험료 인상으로 연쇄 작용할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표준이율 하락으로 무조건 보험료가 오른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보험사는 준비금 부족분을 메우려고 보험료를 올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표준이율 1%포인트 하락이 그대로 예정이율에 반영되면 보험료는 10~15% 오른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있다.

따라서 현재 예상되는 이차 역마진 0.5%포인트를 보험사가 모두 예정이율 인하로 메우면 보험료는 5~8% 오르는 셈이다.

금감원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고스란히 은행 예·대금리 인하로 이어지지는 않듯 표준이율 조정폭에 따른 보험료 변동폭은 예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표준이율이 내리더라도 보험사가 보험료를 지나치게 올리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저금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표준이율을 낮출 수밖에 없다는 처지지만, 자산운용의 실패를 보험료에 전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표준이율 손질 배경에 보험사들의 경영난을 고객에게 떠넘기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금리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로 장기적으로는 고객에게 유리할 것으로 금융당국은 판단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보험료가 오르면 단기적으로 소비자에게 부담될 수 있다. 그러나 보험금을 받아야 하는 20~30년 뒤 보험사가 도산해버리면 더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리가 낮으면 보험료는 비싸진다"며 "보험료를 조금 올려서라도 보험금 지급력을 유지하는 게 소비자에게 장기적으로 유익하다"고 말했다.

보험업계는 또 저금리가 오랫동안 이어진다면 이차 역마진 부담이 상당한 만큼 표준이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예정이율 높으면 상품 만들 때 운용사이드에서 그만큼 수익률을 내줘야 하는데 지금의 투자상황을 보면 주식시장도 안 좋고 국고채 수익률도 낮아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추세로 가다 보면 자산운용 쪽에서 수익을 맞출 수 없을 텐데 현 수식에 따른 표준이율 3.5%로는 건전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표준이율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