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박재완 "부양책 남발하면 일본꼴 난다"

[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최근 정치권에서 경기부양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부는 경기부양 정책을 남발하면 1990년대 일본처럼 빚만 잔뜩 지는 저성장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며 거부 입장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일 대구상공회의소를 방문해 `한국경제의 현황과 정책방향'을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재정 여력을 비축해야 하며 일본의 실패 사례를 거론했다.

이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정부가 제출한 2013년도 예산안을 심의하면서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현실을 의식한 발언으로 분석된다.

박 장관은 "정부가 뭘 하느냐, 지금 나서서 어려운 민생을 살려야지 않느냐는 여론이 빗발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임기 말에 실탄을 다 쏟아부어 경제를 부양하자는 유혹을 내심 받지만 정책 여력만 소진하고 효과가 없으면 너무 무책임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재정 여력이 없거나 제로 금리에 근접한 나라가 많아서 금융정책, 재정정책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자칫 경기부양책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했다.

그러면서 다음 정부가 소신껏 경제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탄약을 남겨둘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2014년까지 재정 적자를 절반으로 줄이기로 한 합의를 이행하는 나라는 한국·호주·캐나다뿐이라는 소개도 빼놓지 않았다.

고령화와 남북통일 등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나라보다 빚을 줄이려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최근 원화 강세와 관련해서는 경상수지 흑자 추세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박 장관은 "서비스수지가 14년 만의 경상수지 흑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면서 "관광, 운수, 국외건설, 콘텐츠 등에서 상당히 탄탄한 증가세를 보여서 무역수지 증가 폭이 줄었는데도 경상수지는 상당히 괜찮은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은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폭이 작년보다 늘어난 나라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면서 "이런 점이 최근 외환시장에서 원화 강세로 나타나는 요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으로 꼽히고 있는 가계부채와 관련해선 "지금 가계부채는 당뇨병처럼 오래된 병이라서 운동과 식이요법을 하면 치유할 수 있는 만성병"이라고 평가하고 작년 3분기부터 가계부채 증가세가 눈에 띄게 둔화해 시스템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또 고정금리대출 비중이 높아지고 연체율 증가 속도가 과거보다 높지 않다면서 "가계부채 위험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부문에 대해서는 "주택거래가 매우 부진하고 가격도 약보합세에 머물러 있다"며 부동산 시장이 정상화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했다.

또 물가는 올해 2% 초반대의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낙관했다.

고용 부문에 대해서는 고용률 상승과 실업률 하향안정, 상용직 비중 증가 등 질적으로 양호한 모습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시간제'와 `50~60대' 위주로 일자리가 증가하는 모습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또 내년 대외여건은 유가 하락에 힘입어 지금보다 나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박 장관은 "중동 지역의 유가는 올해보단 내년에 좀 더 약세가 될 것"이라며 "다만, 이란과 시리아 등 지정학적 위험이 해소되지 않아 유가가 요동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상황은 "세계 경제 회복세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호평했고, 차기 지도부 출범을 앞둔 중국은 팡파르 효과로 견조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일본은 3분기부터 경기가 하강하면서 내년에는 경기가 더욱 어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