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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주도 경제개발 5개년계획, 공과는 무엇?

[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성장동력 되찾아 소득분배 개선하려면 올바른 정치 리더십 필요"

1960년대 정부 주도의 성장 정책이 중진국 도약의 원동력이 됐고 현재 다수의 개발도상국에서도 벤치마킹하고 있을 정도로 성공적이었지만, 부작용도 적잖았다는 보수성향 경제학자들의 분석이 나왔다.

이들은 또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과도한 경제민주화가 경제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시아금융학회와 포럼4.0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 5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앞두고 이같은 경제전문가들의 연구결과를 14일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1960년대 수출지향 공업화 정책이 외화·자본·기술 부족과 협소한 국내시장이라는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했으며, 그 결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0달러도 안 되던 우리나라가 세계 최빈곤국에서 고소득 중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관치금융 탓에 금융부실이 늘어난 상황에서 급속한 대외개방이 추진돼 문민정부 말기인 1997년에 이른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게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제개발 과정에서 무분별한 외자 도입으로 통화량이 늘어나고 기업이 부실해졌다고 비판했다.

◇ 정부 주도 경제개발의 순기능과 부작용

제3공화국 경제수석 비서관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입안과 집행에 직접 참여한 오원철 전 수석은 “당시 자본과 기술 및 경험 등 아무런 밑바탕이 없는 불모의 상태에서 오로지 공업국가로 입국해야 한다는 지도자의 과감한 관점의 전환과 더불어 온 국민의 성공에 대한 강한 믿음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기적적인 경제적 성과가 가능했다”고 회고하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모든 자원과 의지를 하나로 모아 놀라울 정도의 높은 국가적 효율성을 발휘케한 유용한 수단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 전 수석은 특히 경제민주화와 관련, “경제에 무슨 민주화가 있느냐”고 반문한 뒤 “기술 개발과 수출을 통한 성장이 있으면 고용 등 복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서울대학교 안병직 명예교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한국경제'라는 기조연설에서 1960년대 수출지향 공업화 정책이 외화·자본·기술 부족과 협소한 국내시장이라는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줬다고 평가했다.

당시 한국은 자본과 기술이 부족하고 국내 시장도 협소한 여건이었음에도 경제발전 방향을 수입대체 공업화로부터 수출지향 공업화로 바꿈으로써 불리한 조건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

안 교수는 당시 국민은 전쟁 이후 국제관계를 '제국주의'로 인식하면서 민족주의 지향이 강해 중소기업과 국내 위주의 공업화를 원했지만, 1964년 면제품 등 가공공업제품 수출이 급증하면서 수출지향형 경제개발 정책이 정립됐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자본가들이 경제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수출금융 등 특혜를 제공했는데 가격왜곡정책이 아닌 시장친화적 정책에 기반을 뒀다고 안 교수는 평가했다.

안 교수는 이에 대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 과정에서 기업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특혜를 줄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달성한 성과에 의해 특혜가 배분되도록 하는 시장 친화적 정책도 주요 정책 기조로 운용했다는 점이 당시 경제정책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아시아금융학회장인 고려대 오정근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과와 평가'라는 주제발표에서 시장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던 1960년대 정부 주도의 성장정책을 채택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에 공급 측면에서 빈약한 생산활동으로 재화가 공급되지 않았고, 수요 측면에서도 극도의 빈곤으로 유효수효가 창출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내외 어려운 여건에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 추진한 수출지향 중화학공업 육성전략 등에 힘입어 기적을 일궈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0달러도 안 되던 우리나라가 세계 최빈곤국에서 고소득 중진국으로 도약한 것이다.

고도성장으로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진 덕분에 1992년까지는 소득분배도 계속 개선됐다.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뤘던 셈이다.

그러나 관치금융의 폐해도 만만찮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정부는 통제된 금융채널을 이용해 제한된 내외자본을 전략적으로 성장전략 부문에 배분했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이 자금 중개기능을 발달시킬 기회를 잃어 금융산업이 타 산업과 비교해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

5차 계획부터 이런 문제의식을 고려해 금융자율화를 추진, 시장 중심의 정책으로 이행하고자 했다. 그러나 정부 개입과 규제가 이어져 금융부실이 늘어난 상황에서 급속한 대외개방이 추진돼 결국 1997년 말 이른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게 됐다.

오 교수는 그러면서 "이제 한국경제가 다시 성장동력을 회복해 소득분배도 개선되는 선순환으로 가느냐, 비등하는 분배욕구에 부응해 성장둔화와 소득분배 악화라는 악순환의 함정에 빠질 것인가 중대한 갈림길에 직면했다"면서 "현명하고 올바른 정치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연말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이 난무하고 있는데 대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 경제성장·사회발전 시너지엔 생산적 복지 강화 필요

서울대학교 박태균 국제대학원 교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배경과 제1,2차 경제개발계획' 발표에서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비용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무분별한 외자도입이라는 부작용에 시달렸다고 지적했다.

외화차관은 1966년 500만달러에서 1969년 1억7600만달러로 34배 치솟았다. 민간의 산업차관 도입도 빠르게 늘어 1971년 외채 원리금상환액은 2억달러에 달했다.

통화량 증가, 외자도입 기업의 부실화, 부실기업 구제를 위한 은행의 여신 급증 등 부작용이 줄줄이 발생했다.

박 교수는 한국을 본보기로 삼는 개발도상국도 외자도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전신인 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 시대에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과 달리 WTO, 자유무역협정(FTA) 체제를 겪는 만큼 시대적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주주의 시대의 정치적 격동기에서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가 흔들림 없이 경제정책을 이끌 수 있도록 지원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현훈 강원대 교수는 '미래 한국경제의 전망과 새로운 발전모형'이라는 발표에서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포괄하는 새로운 경제발전 모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이 상생하는 '포용성장(Inclusive Growth)'과 경제성장관 환경의 지속가능성이 결합한 '녹색성장(Green Growth)'을 새로운 성장전략의 두 개의 축으로 제시했다.

이 교수는 포용성장을 위해 교육과 고용 기회의 형평성을 크게 높이고, 생산적 복지를 강화함으로써 경제성장과 사회적 발전의 시너지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녹색성장을 달성하려면 생산부문뿐 아니라 소비 부문에서 생태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녹색 세제 개혁과 환경 비(非)친화적인 보조금 감축 등을 추진하고, 환경관련 산업을 미래의 성장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 밖에 좌승희 서울대 교수는 자본주의 경제는 기업경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좌 교수는 “기업의 성장 없는 자본주의 발전은 불가능하다”며 “기업이나 경제는 민주화 대상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최근 나오고 있는 경제민주화가 ‘재벌 때리기’로 변질되고 있는 데 대한 우려를 표한 것이다.

김인철 성균관대 교수(차기 경제학회장)도 “한국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로 혜택을 본 대표적인 국가”라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에 대한 의구심이 있긴 하지만 시장 경제에 의한 자원 분배보다 나은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 박재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불가피한 선택"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축사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관련, "6·25전쟁으로 국토는 황폐화됐고, 변변한 지하자원 하나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정부 주도의 성장지향·수출주도형 경제개발 전략 채택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단기간에 절대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물론 이 과정에서 민간의 자생력 약화, 산업·지역 간 불균형, 대외의존형 경제구조 등 구조적 문제점이 누적되기도 했지만, 1962년 1차 계획을 시작으로 총 일곱 차례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우리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고 평가했다.

또 “경제개발 착수 반세기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다”며 “영국이 200년, 미국이 150년에 걸쳐 이룬 성장을 한국은 50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압축 성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전략과 5개년 계획은 IMF 등 국제기구와 골드만삭스 등 주요 IB들에 의해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최근 KSP사업을 통해서 개도국의 경제발전 교과서로 부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이날 향후 한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는 상시, 장기화 되고 있고 대내적인 저출산·고령화로 복지지출은 급증하고 있으며 경제전반의 양극화로 사회적 갈등과 삶의 질에 대한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경제 지형이 급변하는 점을 감안해 새로운 한국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추격 전략만으로는 글로벌 경제를 선도할 수 없으며, 이제부터는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길을 창조적으로 개척해야 한다"며 "우선 FTA 체결 확대 등을 통해 개방무역정책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분별한 복지지출 확대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특히 야권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보편적 복지' 논의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박 장관은 "저출산,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에 비춰 복지지출을 적정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 서민생활 안정과 삶의 질을 높이는 복지는 꾸준히 확충해 나가되, 일하는 복지와 맞춤형 복지의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