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라응찬(74)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신한사태와 남산 3억원’의 용처에 대해 핵심 증인으로 분류돼 온 라 전 회장은 이 같은 사유로 신한 사태와 관련된 공판으로 증인으로 불출석했다.
이에 따라 행방이 묘연한 비자금 3억원의 용처(정치권 전달 등)가 영원히 묻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신한사태로 촉발된 신상훈(64)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이백순(60) 전 신한은행장의 재판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고(故) 이희건 신한금융 명예회장의 자문료 조성 및 차명계좌 관리와 관련된 내용으로, 이 명예회장이 이미 고인이 된 상황에서 이 문제와 관련된 핵심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은 라 전 회장이기 때문이다.
또 1991년 은행장 취임 후 20년 동안 신한의 정신적 지주였던 라 전 회장의 알츠하이머 투병 소식에 신한 직원들도 충격에 빠졌다.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30부(설범식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횡령 혐의로 기소된 신 전 사장과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행장에 대한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는 라 전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을 요구받았다.
형사 30부는 이날 공판에서 "라응찬 전 회장이 '신한사태'의 충격으로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어 증인 출석이 어렵다는 사유서를 의사 소견서를 첨부해 지난 12일자로 법률대리인을 통해 제출해왔다"고 밝혔다.
법원은 이와 관련해 “라 전 회장이 아주 먼 일은 기억하지만 최근 2∼3년의 일은 잘 기억 못한다고 전해왔다”며 “치료중이기 때문에 증인으로 나갈 수 없다”고 불출석 이유를 설명했다.
라 전 회장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증언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어 양측공방에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라 전 회장은 앞서 지난달 26일 공판에서도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통보받았지만, 당시 특별한 사유 없이 불출석했다.
재판부가 검사에게 라 전 회장에 대한 소환장을 다시 보낼지 묻자, 검사는 “우리도 라 전 회장과 접촉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대리인을 통해 다시 출석을 요구하겠다”고 답했다.
신 전 사장 측 변호인은 “병환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며 “검찰 측의 소극적인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증인들 대하듯이 적극적으로 데려와 달라”고 말했다.
신한금융그룹 관계자는 “라 전 회장이 1~2년 전부터 기억력에 문제가 생겨서 전화를 한 사람에게 다시 전화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면서 “현재 상태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라 회장이 골프를 계속 하고 있으니 정상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골프가 기억력하고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했다.
이날 공판에서 이 전 행장은 증인으로 출석해 고(故) 이 명예회장의 경영 자문료 조성과 관련해 진술했다.
신 전 사장은 이희건 명예회장의 자문료를 개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이 전 행장은 이를 반박하는 주장을 펼쳤다.
이 전 행장은 비서실과 지주사 업무지원실이 명예회장의 자문료를 굳이 나누어 관리할 필요가 없으며, 비서실에 자문료의 포괄적인 입출금 등을 위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신한사태는 지난 2010년 9월 이 전 행장이 신 전 사장을 배임과 횡령 혐의로 고소하면서 촉발됐다.
한편, 증인 불출석 사유서를 통해 라 전 회장의 알츠하이머 투병 소식이 전해지자 신한 안팎은 '패닉'에 빠졌다. 라 전 회장은 신한이 무서운 기세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강력한 기업문화를 이끈 신한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