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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커진 상호금융 부실도 급팽창… '제2의 저축은행' 우려

[재경일보 전재민 기자] 상호금융의 자산이 급격히 커지면서 부실도 크게 늘어나 연체 대출만 1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드러났다.

상호금융이 `제2의 저축은행 사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정부는 상호금융 부실을 우려해 대출제한 추진에 나섰지만 업계는 정부가 지나치게 상호금융을 규제하는 바람에 여윳돈이 있는 데도 활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영업구역을 넓혀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상호금융 자산 팽창의 원인인 비과세 예금의 시한마저 3년 연장해주려고 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상호금융은 농·수협 단위조합, 산림조합,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를 통칭하는 것으로 은행처럼 예금과 대출 업무를 보지만, 영업 구역이 한정돼 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상호금융의 총자산은 지난 6월말 438조3000억원으로 2010년말 401조4000억원에서 1년반만에 36조9000억원(8.4%)이 늘어났다.

업권별로 보면, 새마을금고 총자산은 98조3000억원으로 6개월새 7.5%나 불었고, 신협은 52조3000억원으로 5.4%, 농수협·산림조합은 287조7000억원으로 2.8% 증가했다.

점포 수도 1000개를 훌쩍 넘어선 상태다. 지난달 말 현재 신협의 영업점(지점·조합) 수는 1711개, 새마을금고는 1429개에 달한다.

자산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부실도 커지고 있다. 체격은 급격히 커졌는데, 이를 감당할 체력은 오히려 나빠진 것이다.

상호금융의 연체대출 잔액은 지난 7월말 10조6000억원으로 2010년 1월 8조5000억원보다 2조1000억원(24.7%)이나 증가했다.

부실채권 중 원리금 상환이 3개월 이상 연체된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지난 6월 기준 2.4%에 달했다. 이는 시중은행의 거의 두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연체될 확률이 높은 '요주의' 여신비율도 지난해 6월 2.7%에서 지난 6월 3.1%로 상승했다.

연체 자산이 늘자 상호금융의 경영 상태도 나빠져 총자산순이익률이 지난해 상반기 0.76%에서 올해 상반기 0.48%로 급락했다.

이 같은 상호금융의 모습은 보면 대규모 구조조정이 일어나기 전 저축은행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지적이다.

고금리라는 이점에 힘입어 자산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자산건전성이나 수익성 지표는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

최근에는 새마을금고와 신협에서 금융기관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의 대형 비리도 터져 나왔다.

고객 돈을 횡령하거나 임직원이 자신의 조합대출금을 가지고 대부업을 하는 것은 물론 대출을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황당한 일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양천구 새마을금고에서는 18억원 상당의 고객 돈을 빼돌려 외제차와 명품가방을 사는 등 호화생활을 한 새마을금고 20대 여직원이 경찰에 붙잡혔다. 특히 해당 지점의 간부는 여직원의 범행을 알아차리고도 성관계를 맺는 대가로 이를 묵인하는 혀를 찰 사고가 터졌다.

광주의 한 수협 지점은 신용불량자에게 100억 원대 자금을 불법대출해줬다. 특히 불법대출을 해준 것으로 인해 오히려 신용불량자에게 약점이 잡히자 이 신불자에게 놀아나며 5년간 이 같은 거액을 불법대출해준 사실도 드러났다.

대구 대경신협의 일부 임직원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자신의 조합대출금 5억1000만원을 다른 조합원에게 사적으로 빌려주고 2800만원의 이자를 챙겼다가 적발됐다.

광주광역시 우산신협은 금융당국 등으로부터 5차례나 징계를 받은 직원 3명을 9차례나 승진시키고 3차례 자체 표창과 특별 승급 혜택도 제공했다.

또 직원 가족 등 특수관계인에게 11억원을 빌려주고, 대출 상환이 연체되자 7000만원의 대출을 일으켜 이자를 메꾸는 등 수 차례 불법대출도 자행했다.

불법대출이 적발됐을 때는 징계를 피하려고 "본점 공사를 맡게 해주겠다"고 속여 건설업자에게 4000만원을 빌려주고서 다시 받아 불법대출을 갚는 데 썼으며, 이 같은 사실을 은폐하려고 대출 이자를 내부 전산에서 삭제했다.

전라북도 남원산림조합에서는 직원이 점포 시재금 1000만원을 빼돌려 향응과 개인 투자에 사용한 사실이 적발됐으며, 임·직원의 임야 구매에 2000만원을 불법 대출하는 일도 있었다.

경기도 남부천신협은 직원에게 특별상여금을 주기로 이사회에서 의결하고 이 돈을 도로 빼앗아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장과 임원 등 10명에게 사례금으로 줬다.

경기 의정부농협의 한 직원은 건설사 대표에게 12억원의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대표 명의의 신용카드를 받아 5차례에 걸쳐 94만2000원을 사용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상호금융을 이대로 둘 경우 `비리 백화점'이라는 오명 속에서 줄줄이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처럼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저축은행 사태를 교훈 삼아 탈이 나기 전에 건전성을 강화하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상호금융의 부실에 대비해 영업 범위를 제한하는 등 대출 억제를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자산이 100조원을 넘어선 새마을금고와  농수협의 `비회원 대출(영업구역 밖 대출)'을 전체의 3분의 1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을 행정안전부 및 농림수산식품부와 협의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신협의 사례를 들어 새마을금고법에 비조합원 대출 제한 규정을 넣자는 금융위의 제안을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호금융 업계와 국회에서는 정부의 규제 방침과 정반대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영업권 밖 대출이 법으로 제한된 신협은 최근 금융위에 늘어난 자산을 운용할 곳이 마땅하지 않으니 인접 시·군·구 등의 영업구역에서도 대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달라며 영업구역 확대를 요구했다.

비교적 이자가 높은 비과세 예금 덕에 상호금융으로 수신이 몰리는데 당국이 대출을 억제하다보니 돈을 굴릴 데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전신협(전국 신협의 모임) 하상곤 전무는 "영업구역과 유가증권 투자 규제에 묶여 돈 굴릴 곳이 없다"며 "대출을 늘리려니 정부에서 가계부채 늘어나니 대출을 늘리지 말라고 하고, 유가증권에 투자하려니 투자등급 BBB 이하는 못하게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새마을금고, 농협과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호금융이 자칫 제2의 저축은행으로 변질할 수 있다는 당국의 우려에 대해서는 "저축은행은 개인주주 체제여서 1인 독재가 가능했던 반면에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주인이라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지난 8월 기획재정부가 상호금융 예금의 비과세 혜택을 없애도록 하는 세법개정안을 내놓음에 따라 수신 쏠림현상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이번에는 국회가 제동을 걸었다.

당시 기재부는 농수협과 신협 출자금·예탁금에 대한 비과세 혜택은 올해 말로 끝내고 내년부터 5%, 내후년부터는 9% 세율 적용해 부분 과세토록 했다.

그러나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는 상호금융 비과세 혜택을 3년 연장키로 내부 합의했다. 여야가 모두 찬성한 만큼 기재위 전체회의도 무난히 통과할 전망이다.

올해 말부터 2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축소되는 신협 예금의 비과세 일몰(日沒) 시기를 3년 늦추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자소득세(세율 14%)를 면제하는 혜택이 줄어들면 예금이 이탈하고 영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신협 측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조세소위에서 일몰 시기 3년 연장에 의견을 모았다"며 "조만간 전체회의에서 의결하고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당국은 신협과 국회의 이 같은 움직임에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상호금융의 감독방향을 재정립하는 연구 용역을 맡긴 상태다.

금융위 관계자는 "상호금융의 정체성은 지역에 기반을 둔 소규모 관계 영업, `관계형 대출'인데 자꾸 규모를 늘리려면서 대규모 대출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본연의 임무를 외면하고 있다"며 "덩치가 커지면 탈이 나게 돼 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손댔다가 무너졌던 저축은행처럼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관계자도 "저금리로 시중 자금이 넘치는 상황에서 비과세 혜택을 계속 주면 자금의 쏠림 현상이 심해져 부실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 "정치권이 표를 의식해 비과세 혜택을 연장해놓고 나중에 상호금융 부실이 터지면 금융당국에 책임을 뒤집어씌우지 않겠느냐"며 "돈을 굴릴 데도 없는데 수신만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