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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사회책임펀드, 대형주 편중 심각·카지노주 편입

[재경일보 양준식 기자] 주주권익 실현과 친환경, 사회 공헌 등의 가치를 내세우며 11년전 출범한 사회책임투자(SRI) 펀드들의 대형주 편중 현상이 심각한 데다 카지노주까지 편입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의 외형은 커졌지만 투자 방식이 일반 주식형 펀드와 다르지 않아 '착한 투자' 측면에서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도덕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착한 기업'에 투자한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돼 `무용론'에 직면하게 됐다.

2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SRI펀드는 운용방식에서 대형주 중심의 일반 주식형 펀드와 사실상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용펀드와 모펀드를 제외한 설정액 10억원 이상의 국내 SRI펀드 60개의 보유비중 상위 10개 종목 가운데 평균 5∼6개가 시가총액 상위 30위 이내의 대형주인 것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이들 대형주가 SRI펀드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평균 35.2%에 달했다.

종목별로는 전체의 91.7%에 해당하는 55개 SRI펀드가 삼성전자를 편입했고, 보유비중도 평균 14.9%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는 현대차를 편입한 SRI펀드가 53개로 가장 많았고 이어 기아차(40개), LG화학(40개), 현대모비스(27개), NHN(24개), 한국타이어(17개), SK이노베이션(17개), SK하이닉스(16개), 현대중공업(13개) 등의 순이었다.

이중 시가총액 10위권대에 들지 못한 기업은 47위인 한국타이어뿐이다.

SRI펀드의 보유비중 상위 10개 명단에 한 곳이라도 이름을 올린 종목은 총 96개였고, 이중 시가총액 상위 100위에 들지 못한 종목은 36개(37.5%)로 전체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국내 SRI 공모펀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설정액 기준으로 75%에 달하는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자산운용(이하 알리안츠자산운용)은 SRI 운용자산의 65% 가량을 중대형 가치주나 성장주로 구성했다. 사실상 일반 주식형 펀드처럼 운용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지배구조 우수기업이나 한국거래소의 SRI지수 편입종목 대부분이 대형주인 것도 문제다.

SRI지수 구성종목 중 1∼5위는 삼성전자, 현대차, POSCO, 현대모비스, 기아차 등 시가총액 1∼5위 종목이 차지하고 있다.

환경과 기업윤리, 기업지배구조 등 부문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한다는 투자원칙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특히 SRI펀드의 취지상 오염물질 방출이나 담배제조, 도박, 주류업체는 편입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 원칙지만, 일부 SRI펀드의 경우 GKL과 파라다이스 등 소위 `카지노주'를 보유비중 상위 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자산운용사들이 수익률을 지나치게 의식한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일반 주식형 펀드와 차별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수익률 극대화"라며 "사회책임투자를 너무 강조하면 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기업지배구조(ESG) 평가 우수기업이나 한국거래소의 SRI지수 편입종목 등이 대형주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도 한 원인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오덕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평가팀장 "SRI펀드를 가장 쉽게 구성하는 방법은 SRI지수 종목을 편입하는 것인데, 이것 자체가 코스피 200이나 우량기업에 편중돼 있어서 일반 주식형 펀드와 다를 것이 없다는 무용론이 나온다"면서 "제대로 된 SRI 투자에는 세제혜택을 주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