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 100명 중 4명(19만명)은 집을 경매에 넘겨도 빚을 모두 갚기 어려운 `깡통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신용등급이 낮고 금융기관 여러 곳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고위험군'에 속하는 하우스푸어(House Poor)는 23만명, 대출규모는 26조원에 육박했다.
지금 당장 무너질 가능성이 큰 1개월 이상 연체자와 담보인정비율(LTV) 80% 초과 대출자만 최대 8만명에 이르러 감독당국이 이들 8만명에 대한 정밀조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아직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문제가 감당할만한 수준이지만, 감독당국은 이들이 불황과 부동산 침체가 더 길어지면 가장 먼저 터질 수 있는 뇌관이라고 보고 있다.
2일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주택담보대출 현황 조사에 따르면, `고위험' 채무자로 분류된 초과대출자, 저신용등급 다중채무자, 비은행 후순위대출자 중 어떤 것을 적용해도 약 20만명은 `깡통주택'을 갖고 있거나 여러 금융회사에 과도한 채무를 지고 있어 빚을 다 갚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부동산 경기침체가 길어져 집값이 더 떨어진다면 가장 먼저 부실화해 가계부채 폭탄의 진앙지가 될 수 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중 집을 경매에 넘겨도 금융회사가 대출금을 모두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경락률(감정가 대비 낙찰가율) 초과 대출자는 전체의 3.8%에 해당하는 19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대출 규모는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3.3%인 13조원에 달한다.
지난 1~10월 전국 평균 경락률은 76.4%인데 이는 1억원짜리 자산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764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경락률을 초과해 돈을 빌렸다는 건 경매로 집을 팔아도 대출금 일부를 갚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집을 팔아도 '채무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된 것이다.
경락률 초과대출은 수도권이 18만명(12조20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지방은 1만명(8000억원)이었다.
권역별로는 상호금융 11만명(6조1000억원), 은행 7만명(5조6000억원), 저축은행 1만명(5000억원) 순이었다.
양현근 금감원 은행감독국장은 "수도권 집값이 더 큰 폭으로 내려 경락률 초과대출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정서상 집이 최후의 보루인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이 다른 금융자산으로 빚을 갚을 가능성은 작다.
금감원 관계자는 "경락률 초과대출자 19만명은 이미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주택가격 하락이 원인이 됐기 때문에 앞으로 집값이 더 내려가면 먼저 취약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9월 말 기준으로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이고 금융기관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사람은 전체의 4.1%에 해당하는 23만명, 대출 규모는 4.8%인 25조5000억원로 집계됐다.
저신용 다중채무자와 경락률 초과대출자는 상당수 중복된다.
다중채무자는 은행과 비은행권에서 함께 돈을 빌린 차주(借主)가 16만명으로 가장 많았다. 비은행만 이용한 차주도 7만명에 달했다. 은행에서만 돈을 빌린 사람은 2천명에 불과했다.
저신용 다중채무자는 이미 상환능력을 거의 소진한데다 고금리 대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집값이 더 내려간다면 '상환불능'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가장 크다. 사채시장으로 들어갈 우려도 크다.
당장 부실 위험이 있는 1개월 이상 주택담보대출 연체차주는 전체의 0.8%에 해당하는 4만명으로 전원 7등급 이하의 저신용층이었다.
주택가격 하락세 속에서 담보인정비율(LTV) 한도를 훨씬 넘긴 대출도 지속적으로 늘었다.
은행권 LTV 70% 초과대출은 2010년 말 7조5000억원에서 2011년 말 7조9000억원, 지난 9월 말 8조3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은행권의 LTV 한도는 50%다.
전체 금융권의 LTV 70% 초과대출자는 24만명(26조7000억원)이었고, 80%를 넘긴 대출자도 4만명(4조1000억원)에 달했다.
빚 갚을 가능성이 떨어지는 후순위 주택담보대출을 보유자는 15만1000명, 대출금은 5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에 선순위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비은행에 또다시 후순위대출을 받은 이들 15만명도 안심할 수 없다.
후순위 주택담보대출의 연결기준 평균 LTV는 63.4%로 비은행 평균 60.5%보다 2.9%포인트 높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비은행 후순위대출자 가운데 3만3000명은 담보인정비율(LTV)이 70%를 초과한다"며 "나중에 빚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큰 고위험 차주"라고 지적했다.
한 금융 전문가는 "이들이 평생의 빚에서 허덕이지 않게 '소프트랜딩'을 유도하고 경기침체기에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도록 정밀한 금융안전망을 하루빨리 구축하는 문제가 당국의 최대 숙제"라고 지적했다.
이번 결과를 토대로 금감원은 이달부터 고위험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정밀검사에 나설 예정이다.
감독당국은 가계부실화를 잡기 위해 가장 먼저 현미경을 들이댄 곳은 부실위험이 가시화된 1개월 이상 연체자와 LTV 80% 초과대출자다. 4만명씩 최대 8만명에 달한다.
금감원 이기연 부원장보는 "부실위험이 있는 1개월 이상 연체 주택담보대출자 4만명과 LTV 80% 초과대출자 4만명의 리스크 현황과 채무상환능력 등을 정밀점검할 예정"이라며 "중복도 있기 때문에 점검에서 정확한 수를 추리겠다'고 말했다.
또 "가계부채 대응 태스크포스(TF)도 구성해 고위험군 부실화 가능성에 선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권역별로는 상호금융에서 부실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상호금융의 원금 1일 이상 연체자는 전체 4만명의 절반에 육박하는 1만9000명에 달했다. 은행권은 1개월 이상 연체자가 1만7000명으로 집계됐다.
위험수위로 여겨지는 LTV 70% 이상 초과대출도 상호금융이 15만1000명으로 가장 많았고 은행이 6만8000명으로 뒤를 이었다.
당장 부실가능성이 있는 LTV 80% 이상 대출자는 은행 2만7000명, 저축은행 5000명, 상호금융과 여신전문금융사가 각 4000명이었다.
이 부원장보는 "금융회사별로 정기적인 LTV 평가시스템을 구축해 고위험군 부실화 가능성에 선제로 대응하게 유도하고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가계부채 통계의 정확성·적시성을 높인 시스템을 만들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가계부채가 아직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원장보는 "경락률 초과대출이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3.3%, 7등급 이하 연체자는 1.1%로 은행 등의 손실흡수 능력을 고려할 때 당장 위험하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10월 말 기준 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312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6조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지난해 중 16조8000억원 늘어났던 것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절반 이하로 누그러졌다.
금융권 전체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394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