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대기업 계열사 대표이사와 직원들이 수년간 함께 일하던 중소협력업체가 개발한 핵심 기술을 빼내 몰래 훔쳐 쓰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몰래 빼낸 중소협력업체의 ATM(현금자동입출금기) 관련 핵심기술로 동종 프로그램을 만들어 영업한 혐의(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피에스넷 대표이사 김모(45)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시스템 유지·보수비를 아끼려고 지난 3월 A사에 파견 근무 중이던 중소협력업체 B사 직원의 노트북에서 외부저장장치(USB)를 이용해 금융자동화기기 프로그램 소스를 몰래 빼낸 뒤 변형 프로그램을 제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범행을 말리는 부하직원에게 오히려 프로그램 소스를 훔치도록 강요했으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추가로 10회에 걸쳐 변형 프로그램을 제작·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른 A사 피해 예상금액은 7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A사는 지난 2008년 12월 롯데피에스넷과 계약을 맺고 직접 개발한 ATM기와 ATM 운용 프로그램을 공급한 후 시스템 유지와 보수 서비스를 제공해왔으나 롯데피에스넷은 시스템 유지 및 보수비용으로 지불하는 금액이 만만치 않다고 판단해 대기업 계열사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A사에 프로그램 소스를 공개할 것을 수 차례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사가 소스 공개를 거부하자 부하직원 박모(48)씨에게 A사 핵심 프로그램 소스를 빼오라고 지시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사가 협력업체에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영업 기밀을 알려달라고 요구했으며 거부하자 새로운 협력업체 선정 입찰 공고를 내며 압박했다"며 "롯데피에스넷은 협력업체 입찰 자격에 프로그램 소스를 공개하라는 조건을 걸어 A사를 탈락시키고 A사에서 빼낸 영업 기밀을 변형해 부당하게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기업이 중소기업 기술을 침탈하면서 동반성장을 저해하는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중소기업을 상대로 첩보 활동을 강화해 유사사례를 찾아내면 엄중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