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유진 기자] CJ제일제당과 삼양사 등 밀가루 생산업체가 가격을 담합하는 바람에 높은 가격으로 밀가루를 매수해 수익성이 떨어진 중간소비자 업체 삼립식품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최종 확정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담합과 관련해 최종소비자가 아닌 중간소비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로, 향후 밀가루와 설탕 등 원료업계는 물론 전자, 자동차 등 중간단계를 많이 거치는 산업에서 유사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2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지난달 29일 "가격 담합으로 인한 피해를 물어내라"며 제빵업체 삼립식품이 밀가루 생산업체인 CJ제일제당과 삼양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CJ제일제당이 12억4000만원, 삼양사가 2억3000만원을 각각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밀가루 제조업체들이 공동으로 공급량을 제한하고 가격을 인상하는 바람에 삼립식품을 포함한 밀가루 대량수요 기업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한 원심판결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CJ제일제당과 삼양사가 도매상에 대한 공급가격을 담합했다 하더라도, 삼립식품을 포함한 밀가루 대량 수요 기업에 대한 밀가루 가격 변경(인상)이 초래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힌 2심 판결을 인용했다.
대법원은 2심 재판부가 “CJ제일제당과 삼양사가 삼립식품에 장려금을 지급했다 하더라도, (담합에 따른 밀가루 가격인상 으로 인해 삼립식품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점도 타당하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06년 4월 CJ제일제당과 삼양사 등 국내 밀가루 생산업체 8곳이 지난 2001년부터 5년 간 조직적으로 밀가루 생산량과 가격을 담합한 사실을 적발, 이들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4000억원 이상의 손해를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43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들 업체로부터 밀가루를 공급받아 빵을 만들었던 삼립식품은 부당하게 가격이 높게 형성된 밀가루를 사들여 손해를 입었다며 자발적인 배상 요청 공문을 발송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같은해 11월 CJ제일제당과 삼양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CJ제일제당과 삼양사는 삼립식품과의 별도 협의를 거쳐 가격을 정했기 때문에 담합이 아니라고 맞섰지만 1·2심 재판부는 경제학적 모형을 사용한 감정인의 전가액 분석을 통해 삼립식품이 밀가루 부당 인상분 가운데 15억원 가량을 떠안게 됐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삼립식품의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의 양호승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중간소비자에 대한 배상 책임 법리에 관한 국내 최초의 선구적 사례로 향후 밀가루와 설탕 등 원료업계를 비롯해 중간 단계를 많이 거치는 전자, 자동차 등 다른 산업계에도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중간소비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이번 판결이 향후 다른 담합 피해 사건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공정위는 밀가루제조업체 뿐 아니라 설탕제조업체와 정유업체, LPG 업체도 담합을 인정한 바 있어 과자, 석유 대량사용 업체, LPG를 연료로 하는 택시회사 등 중간 소비자 기업들의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