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김찬경(56·구속기소)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지난 5월 중국으로 밀항하기 직전 서울시내 우리은행 한 지점에서 203억원의 도피자금을 인출한 것과 관련, 우리은행이 해당 지점 영업정지와 임직원 무더기 징계 등 중징계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우리은행 서초사랑지점에 대해 3개월 동안 신규예금을 받지 못하는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또 내부통제시스템에 허점을 드러낸 부행장 등 임직원에 대해서는 무더기 경징계 처분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영업정지는 중징계 처분이기 때문에 이달 말 열리는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우리은행 서초사랑지점은 금융실명제법을 어기고 김 전 회장의 차명계좌를 10여개 만들어준 데 이어 미래저축은행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지기 사흘 전인 지난 5월 3일 오후 5시께 김 전 회장이 현금 135억원과 수표 63억원 등 총 203억원을 도피자금으로 빼내가도록 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은행 내규에 따라 3억원 이상의 거액이 인출되면 자체 상시감시시스템에서 걸러내야 하는데 김 회장 인출 당시 해당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은 인출 후 4시간 뒤 경기도 화성시 궁평항에서 밀항을 시도하다가 체포됐다.
이 지점 직원들은 김 전 회장의 차명계좌를 개설해 주고 비밀번호 변경 과정에서도 적극적으로 각종 편의를 제공, 사실상 김 전 회장의 자금세탁과 도피자금 인출을 도왔다.
먼저 김 전 회장은 이 지점에 200억~300억원의 예금을 맡겼는데, 이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 지점 수신액의 3분의 1에 이르는 규모여서 지점 직원들은 ‘특별고객’인 김 전 회장의 요구를 무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직원들은 예금거래 때 본인으로부터 실명 증표를 제출받아 확인하도록 정한 금융실명제법을 어기고, 김 전 회장이 주변 인물들의 명의를 빌려 계좌를 만들 수 있도록 해줘 김 전 회장은 이 지점에 차명계좌 10여개를 만들 수 있었다. 여기에 관여된 직원만도 2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 전 회장은 이 계좌를 활용해 다른 은행 수표를 현금화하는 등 돈세탁을 했다.
또 김 전 회장이 밀항을 시도하다 체포된 5월 3일, 203억원을 인출하면서 급하게 비밀번호를 바꾸는 과정에서도 이 지점 직원들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밀항 시도 전날 해당 지점에 “뱅크런에 대비하고 유상증자에 사용해야 한다”며 예금 전액을 찾아가겠다고 연락했다.
이튿날 김 전 회장은 미래저축은행 직원을 통해 돈을 찾으려 했으나, 지점 직원들이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자 자신의 운전사를 우리은행에 보내 비밀번호를 바꾼 뒤 돈을 인출했다.
비밀번호를 바꾸는 과정에서 우리은행 직원은 김 전 회장이 전화로 불러준 비밀번호를 직접 ‘핀패드’에 입력해 비밀번호를 변경했고, 인감 증명 등 관련 서류도 사후에 갖춰 놓은 것으로 금융당국 조사 결과 드러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비밀번호를 바꾸려면 고객인 예금주 본인이 바뀐 번호를 핀패드에 직접 입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금융당국은 3억원 이상의 거액이 인출됐는데도 상시감시 시스템에서 이를 걸러내지 못한 책임을 물어 우리은행 본점에 대해서도 최소 기관경고 이상의 제재를 내릴 방침이다.
징계를 받는 임직원 규모도 50여명 이상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현직 부행장을 포함해 간부급들도 대거 포함됐다. 이들은 감봉, 문책적 경고, 주의적 경고 등을 받을 예정이다.
우리은행 본점과 관련 직원에 대한 최종 제재 수위는 오는 26일 열리는 금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