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전재민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1일 지난해 4분기 이후 경기상황이 더 악화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에서 기준금리를 현 수준(2.75%)에서 동결했다.
비록 한은이 이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로 낮추고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 `저성장 지속'이라는 표현을 처음 들어가는 등 잠재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지만 `성장의 세(勢)'는 유지하고 있어 금리를 인하할만큼 비관적인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기 개선세가 아직 미약한데다 주요국의 양적완화와 원화절상 추이에 한은이 금리를 내려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금리 인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날 금통위는 지난해 `L자형' 경기상황이 올해 `나이키형'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이날 금통위가 금리를 동결한 직후 기자회견에서 "성장의 `세(勢)'는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기준금리 인하) 결정을 할만한 정보가 없어 동결했다"며 "2013년의 성장추세가 바뀐 것이 아니라 베이스(바닥)가 예상보다 떨어졌다는 의미다"고 설명했다.
경제성장률이 2%대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개선의 기미가 보이고 있어 아직은 실탄(금리 인하 여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지난해 3분기 경기가 상당히 나빴으나 4분기부터는 다소 개선되는 모습을 보인다"며 "(경기가 앞으로 호전되는데) 굳이 금리를 내릴 필요가 있겠느냐는 논리"라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이 `재정절벽(fiscal cliff)' 협상을 타결해 금융시장의 가장 큰 불안요인이 일단 없어졌다.
또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생산ㆍ소비 지표가 작년 말 호전된 것도 긍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인 미국 정부의 부채한도 상향조정 논의가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실탄을 아껴둘 필요도 있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책임연구원은 "이런 상황에서 섣부르게 금리를 인하한다면 정작 금리인하 효과가 나타날 때 경기가 과열돼 물가상승 압력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또 국내에서는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꾸려진 상태에서 앞으로 어떤 경제정책이 불쑥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새 정부의 정책을 보고 이에 맞춰 통화정책을 펴겠다는 뜻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가 일각에서는 금통위의 인식보다 우리 경제 성장세가 미약하다며 기준금리 동결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현재 정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은 3.0%이지만 하방위험이 커 이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을 60% 가량 1~2분기에 조기 집행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최근 1%대까지 떨어진 지금이 물가불안 없이 성장을 위해 금리를 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일본 등의 통화완화 기조로 원화 가치가 계속해서 절상되고 있어 우리도 발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달러, 엔화가 국제 금융시장에 대량으로 풀리며 우리나라의 원화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절상하고 있다. 이날은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이 달러 당 1,060원대가 붕괴됐다.
금융연구원 임 진 연구위원은 "3월까지 금리 인하가 없으면 한은이 `실기'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연구원은 "원화절상 추세에 수출기업 채산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주식시장에서 이미 자동차 업종을 중심으로 이러한 우려가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위원도 "현 상황에서 외국 자본의 유입을 줄여줄 수 있는 거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총재는 하지만 환율에 대한 우려에 "과거에는 엔화 약세가 되면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이 왔지만 최근 우리 수출품목은 비(非)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금리가 환율 변화에 주는 효과도 깊이 검토했지만 금리는 환율 하나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