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상량식 |
전통건축 공정에서 제일 먼저 시작하는 일은 기초 다지기이다. 이 일을 하기에 앞서 집 짓는 일이 시작됨을 천지신명께 알리는 개기식開基式과 지신地神에게 그 땅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텃고사와 모탕고사를 지낸다. 이 외에도 건물의 주초를 설치하고 첫 번째 기둥을 세우는 입주식立柱式부터 상부가구를 짠 후 상량대를 거는 상량식上梁式까지 수많은 건축의례가 행해진다. 궁궐건축의 역사와 내용을 기록한 영건의궤에 의하면 주요공정으로 개기開基, 정초定礎, 입주立柱, 상량上樑 네 과정을 꼽을 수 있다.
성주풀이와 가신신앙家神信仰 에서 나타난 ‘집’은 단순히 거주공간의 의미를 넘어 ‘성주신’이라는 인격체이다. 부모로부터 생명을 받아 태어나는 것처럼 집짓는 과정은 인격체의 탄생과정과 같은 절차와 통과의례를 거친다. 집을 짓는 목수 역시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신체神體를 모시는 의식의 제관祭官으로 인식돼 대목장이 직접 건축의례를 주관한다. 전통적인 관념에서 대목장은 건축물을 짓고 숨결을 불어넣어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는 존재인 것이다.
창경궁 문정전 개기식
개기식開基式
개기식이란 건물의 터를 처음으로 여는 의식으로 대목장이 주관한다. 개기와 동시에 한쪽에서는 ‘모탕고사’를 지낸다. 목수들의 작업대를 ‘모탕’이라고 부르는데 집주인이 돼지머리를 비롯해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하면 모탕 위에 제물을 진설陳設해두고 공사가 원활하게 진행되기를 기원祈願한다. 개기식과 상량식은 『영건의궤』에서도 등장하는 건축의례이다. 『화성성역의궤』의 「개기고유제開基告由祭」 내용을 보면 일을 시작하기 하루 전날 일을 시작할 곳에 표목標木을 세우고 문을 설치한 뒤 개기 날 이른 아침 의례에 따라 음식을 차리고 사방에 절을 한 뒤 정한 시각이 되면 일을 시작했다.
성남시 대광사 입주식
입주식立柱式
입주식은 치목을 모두 마치고 첫 기둥을 세우는 날 거행하는 의식이다. 입주식을 시작으로 건축 공정이 치목에서 조립단계로 넘어가게 되므로 통과의례적 의미를 부여하여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관공서는 물론 민가에서도 길일吉日을 택일해 거행했다. 가장 먼저 세우는 기둥 앞에는 모탕고사 때와 마찬가지로 상을 차려놓고 건물이 무사히 올라갈 수 있도록 제를 올린다.
팔달문 상량식
상량식上梁式
상량식은 『영건의궤』에도 빠지지 않고 기록돼 있어 이미 조선시대에 건축의례로 정례화됐음을 알 수 있다. 세월이 변함에 따라 생략되는 건축의례도 많지만 상량식만큼은 대부분 거행하고 있다. 상량식을 거행하기에 앞서 먼저 상량문을 작성한다. 집이 들어선 터를 설명하고 집을 짓게 된 내력과 축원하는 글을 적어서 종도리나 대들보에 홈을 파고 그 안에 집어넣어 평상시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것이 관례이다. 궁궐건축의 경우 당대 최고 문장가에게 글을 맡겨서 상량문은 건물에 보관하고 글은 문집에 기록으로 남겼다. 상량문 말미에 건축공사 관계자의 이름을 기록하기도 한다.
자료제공_수원화성박물관
박광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