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올해 세법 개정으로 `세금 폭탄'이 예상되고 있는 고액 자산가(슈퍼리치) 약 13만명이 금융상품을 서둘러 바꾸는 등 대이동에 나서면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유명 보험사의 즉시 연금이 동나고 월지급식 주가연계증권(ELS)은 상한가를 치는 등 절세 상품이 금융 시장을 휩쓸 태세다.
새마을금고와 신협 등 상호금융에서는 몰려드는 뭉칫돈에 손사래 치는 진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나라 금융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10억원 이상 금융 자산 보유 고액 자산가 13만명의 보유 자산 300조원이 '세금 폭탄'을 피해 대이동할 조짐을 보이면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잇다.
다음달부터 금융소득 2000만원 이상에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하고 상속형 즉시 연금은 10년 이상 계약 시 1인당 2억원까지만 비과세하는 방향으로 올해 세법이 개정되면서 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와 보험사 자산설계센터(FP)는 평일 1000여건이던 상담이 최대 3000여 건까지 폭증하는 등 고액자산가의 문의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고액 자산가 대부분은 세금 폭탄을 피하면서 저금리·저성장 시대에 가장 수익성 높은 금융 상품을 알려달라고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최근 경기 침체로 자산 운용 수익이 급락하면서 고액 자산가들도 세금에 굉장히 민감하다"면서 "올해 세법 개정으로 납부 세액이 커질 것으로 보이자 절세 상품으로 일제히 갈아타려는 움직임에 금융시장이 큰 혼돈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즉시연금은 막차를 타려는 고액 자산가가 넘쳐 금융사들이 가입을 거부하는 사례까지 생겼다.
삼성생명 등 대형 생보사에 이달 들어 3500여억원에 달하는 돈이 즉시연금으로 들어오자 삼성생명은 은행에서 판 즉시연금이 한도에 달해 거래를 중지했고, 교보생명 등 대부분 보험사는 저금리에 의한 역마진을 우려해 즉시 연금 판매를 중단했다.
일반적으로 10년 이상 유지하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장기 저축성 보험에도 고액자산가들이 눈을 돌리고 있다.
보험사들은 `보험 가입 후 10년 유지'라는 비과세 전제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우면 가족에게 사전 증여하는 방법도 권하고 있는데, 차명 계좌로 분산 관리하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장기 저축성 보험은 중도 해지했을 때 그해 받는 이자와 배당이 2000만원을 넘으면 종합과세 대상이 되니 주의해야 한다"면서 "보험과 달리 은행 등 타 금융권은 비과세 혜택 자체가 없으므로 이번 세법 개정에 의한 충격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지급식 ELS, 주가지수연동예금(ELD) 등 월지급식 주식형 상품에도 고액자산가들이 몰리고 있다.
신한은행은 넘치는 수요에 대비해 조만간 월지급식 ELS와 ELD 상품을 1개씩 추가해 출시할 방침이다. 우리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월지급 ELS 열풍은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아진 것과 관련이 있다"면서 "지급액을 매달 쪼개 받아야 2000만원을 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주식형 펀드는 주식시장과 연결돼 있기는 하지만 과세하지 않고 있다"면서 "PB전용으로 주식형 펀드 상품을 만들고 있으며 월지급식 ELS도 새로운 절세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국외 투자에 관심 있는 고액 자산가들은 비과세인 브라질 채권에 손을 대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저축률을 높이기 위해 18년만에 부활하는 재형저축도 이미 상품 출시 시기를 묻는 자산가가 폭주하는 등 대박이 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재형저축이 새로 나오는데 고객 본인 한 사람이면 액수가 크지 않지만 배우자, 자녀까지 해서 포트폴리오 재형저축이 인기를 끌 것 같다"고 전했다.
연이은 영업정지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 저축은행을 대신해 상호금융에도 고액 자산가들이 뭉칫돈을 넣고 있다.
상호금융은 비과세 예탁금 한도가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확대된데다가 시중은행보다 여전히 금리가 높아 수신금리를 내려도 자산가들이 몰리는 현상이 뚜렷하다.
신협은 1년여 만에 수신액이 4조여원, 새마을금고는 13조여원이 급증했다.
그러나 들어오는 돈은 많은데 빌려줄 데는 없다 보니 예대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상호금융의 예대율은 2008년 말 77.3%에서 지난해 9월 말 기준 66.6%로 하락했다.
한 상호금융 관계자는 "돈이 물밀듯이 밀려오는데 막상 대출해 수익을 낼 곳이 없어 막막하다"면서 "고액은 예금을 시차를 두고 쪼개서 넣어달라는 부탁까지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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