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전재민 기자] 재벌의 금융권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 1위인 삼성그룹 소속 삼성생명은 계열사 물량을 제외하면 순위가 5위로 추락했고, 현대차그룹 소속 HMC투자증권도 계열 물량을 빼면 5위에서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롯데손해보험은 계열사 비중이 94%에 육박했고,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은 계열사 물량이 80%를 넘었다.
30일 금융감독원의 퇴직연금 비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기계열사를 제외한 가입자의 적립금 규모는 신한은행이 6조96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국민은행(6조863억원), 우리은행(5조2223억원), 기업은행(4조3645억원) 등 은행권이 1~4위를 모두 차지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4분기 실적부터 적립금 규모를 '자기 계열사'와 '기타 가입자'로 구분해 이번에 처음으로 공시했다. 자기 계열사는 퇴직연금사업자와 같은 계열기업군을 뜻한다.
이같은 방식의 비교공시는 국정감사에서 대기업의 금융계열사 퇴직연금 몰아주기에 대해 문제가 제기된 이후 처음이다.
5위는 적립금 규모가 3조8510억원이었던 삼성생명이 차지했다. 그러나 계열사 물량을 더한 전체 적립금 규모는 8조5856억원으로 1위로 껑충 뛰었다. 이는 2위인 신한은행(6조2632억원)과 2조원3000억원 가량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어서, 삼성그룹의 삼성생명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가 심각한 수준임이 드러났다.
6위는 하나은행(2조9258억원), 7위는 농협은행(2조5402억원), 8위는 산업은행(2조3934억원)이 차지해 상위 10위권에 은행이 7곳이나 됐다.
미래에셋증권(2조1461억원)은 9위로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톱10'에 이름을 올렸고, 10위는 교보생명(2조84억원)이 차지했다.
삼성생명을 위시해 대기업 금융계열사들은 전체 적립금에서 계열사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높았다.
롯데손해보험은 적립금 7163억원 가운데 계열사 물량이 무려 93.9%에 달해 계열사 비중이 가장 높았다.
전체 적립금 규모 5위인 HMC투자증권은 계열사의 적립금이 4조145억원으로 전체 적립금의 91.0%를 차지했다. 현대차그룹 물량을 빼면 순식간에 24위로 밀려난다.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도 계열사 물량이 81.9%나 돼 9709억원 가운데 현대중공업 계열사의 적립금을 빼면 1755억원밖에 되지 않았다.
삼성생명(55.1%), 삼성화재(44.4%)도 삼성그룹의 퇴직연금 비중이 높았다.
반면 신한은행(2.7%), 국민은행(1.1%), 우리은행(0.9%), 기업은행(0.3%), 하나은행(0.6%) 등 은행권의 계열사 물량 비중은 한자릿수에 그쳐 대기업 금융계열사와 대조를 보였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안덕수 의원이 공개한 자료로는 롯데그룹이 전체 퇴직금 4500억원 가운데 4200억원(93.0%)을 롯데손해보험에 몰아줬으며, 현대차는 HMC투자증권에 3조1200억원(91.6%), 현대중공업은 하이투자증권에 7000억원(81.7%)의 퇴직연금을 각각 밀어줬다.
삼성그룹은 10조4100억원에 달하는 퇴직연금의 43.5%인 4조5400억원을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에 몰아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