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박수현 기자] 정권교체기를 틈타 식품가격이 무더기로 올라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서민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식품업계는 비용 부담이 늘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최근 국제곡물가격이 크게 내린데다 원화 강세까지 겹쳐 업체들의 원재료 수입 부담이 줄어든 상태이고 최근 실적도 나쁘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식품기업들이 당국 감시가 소홀한 정권 교체기를 틈타 '묻지마 가격 인상'에 나섰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식품업체들의 탐욕에 대한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식품업체들은 최근 두부, 콩나물, 과자, 밀가루, 식용유, 조미료, 술, 음료수, 우유 등 거의 모든 품목에 걸쳐 식품 가격을 무더기로 올렸다.
가격을 올린 기업도 CJ제일제당, 풀무원, 오리온, 크라운제과, 농심, 샘표식품, 대상, 대한제분, 하이트진로, 오비맥주, 한국코카콜라, 롯데칠성음료, 오뚜기, 동원F&B, 서울우유 등으로 거의 대부분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국제 곡물가격의 상승 등 원가 부담이 커져 제품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내놓는 세계식량가격지수 자료를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FAO는 곡물, 유지류, 육류, 낙농품, 설탕 등 주요 농산물의 국제가격동향을 살펴 매월 식량가격지수를 발표하는데, 지난해 세계식량가격지수 연평균은 212로 전년(218)보다 오히려 하락했다. 품목별로는 설탕은 17%, 유제품은 15%, 유지류는 11% 급락했고, 곡물과 육류도 각각 2.4%, 1.1% 하락했다.
식품기업들은 지난해 하반기 국제 곡물가격 급등이 4~7개월의 시차를 두고 국내에 반영돼 식품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지난해 9월 이후 국제곡물가격이 안정세를 보였기 때문에 이 또한 설득력이 없다.
지난해 9월 263이었던 FAO 곡물가격지수는 10월 260, 11월 256, 12월 250, 올해 1월 247로 뚝뚝 떨어지고 있다.
이같은 원재료 가격 하락으로 식품기업의 이익은 급증했다.
국내의 대표 식품기업인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2461억원으로 전년보다 45% 급증했고, 대상의 순이익 증가율은 33%, 샘표식품과 롯데칠성음료는 각각 68%에 달한다. 하이트진로의 순이익은 무려 107%, 대한제분은 920% 급증했다.
더구나 국제 곡물가격은 올해 들어 더 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남반구 지역의 생산량 증가와 북반구의 재배면적 확대로 밀, 옥수수, 콩 등의 곡물 가격은 올해 크게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원화 강세 요인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가격 인하를 고려해야 할 판이다.
지난해 5월 말 1,180.3원이었던 달러당 원화 환율은 6월부터 본격적으로 하락해 연말에는 1,070.6원으로 100원 이상 떨어졌다.
이는 원화 강세로 외국에서 달러로 곡물을 수입해야 하는 식품기업들의 부담이 그만큼 줄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작년 하반기 곡물가격의 급등을 원화 강세가 상당 부분 상쇄했다"며 "이는 지난해 증시 침체에도 식품기업 주가가 강세를 보인 요인 중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환율을 고려한 올해 2분기 곡물 수입가격이 1분기에 비해 콩은 10%, 옥수수는 6%, 밀은 2.4% 추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의 전민선 간사는 "가격을 올려야 할 때는 잘 올리지만, 내려야 할 때 잘 내리지 않는 국내 식품기업의 행태는 반드시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한석호 부연구위원은 "국제 곡물가격의 뚜렷한 하락 추세와 원화 강세로 말미암은 수입비용 감소를 고려한다면 올해 2분기에는 당연히 식품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