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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은행, 근저당 설정비 반환하라" 첫 판결

[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시중은행 대출자가 부담한 근저당권 설정 비용을 은행이 반환하라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출 계약서에 근저당권 설정비 부담에 관한 고객의 의사 표시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면 은행이 설정비를 고객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

이번 판결은 지난해 12월 대출자들이 은행들을 상대로 낸 유사한 취지의 집단 소송에서 반환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것과 상반된 것이어서 향후 상급심 판결이 주목된다.

은행권에서도 첫 패소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신용협동조합을 상대로 낸 비슷한 소송에서 대출자들이 승소한 바 있다.

근저당권 설정비란 담보대출 때 발생하는 부대 비용으로 등록세, 교육세, 신청 수수료 등을 의미하며, 통상 1억원을 대출받을 때 70만원 정도가 든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단독 엄상문 판사는 20일 장모씨가 "근저당 설정비 75만1750원을 반환하라"며 신한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장씨는 2011년 11월 대출약정시 근저당권 설정 비용 70여만원을 자신이 부담한 것이 부당하다며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었다.

엄 판사는 이에 대해 "해당 대출상품설명서의 내용만으로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누가 부담할지에 대한 실질적 개별약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비용을 원고가 부담하기로 하는 관련 약정은 고객에게 불리한 약관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이번 사안은 약관이 무효이거나 관련 약정 자체가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며 "담보권자가 원칙적으로 설정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 관련 법령의 취지에도 부합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비용은 은행이 부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이번 소송 결과에 대해 "기존에 승소했던 소송과 같은 사안인데 이번 판결만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며 "즉각 항소해서 상급심의 판단을 받겠다"고 말했다.

금융권은 이번 판결로 다시 긴장하고 있다.

시중은행뿐 아니라 저축은행과 보험사 등 대출 과정에서 근저당권 설정비를 고객에게 부담시킨 금융사를 대상으로 한 비슷한 소송 판결이 줄줄이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있을 선고에서도 은행이 승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며 "다만 이 같은 판결로 고객들과 법정 싸움을 벌이는 기간이 길어지고 집단소송이 남발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장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태산의 이양구 변호사는 "고객이 설정비를 부담하겠다는 개별 합의가 없었다는 점을 밝히고, 법에 따라 설정비를 은행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앞서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작년 11월 이모(85)씨가 경기도의 한 신용협동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유사한 취지의 소송에서 "약관이 불공정하고 신의성실 원칙을 위반해 무효"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반면 서울중앙지법은 대출자 360여명이 시중은행 6곳을 포함한 금융기관 40여곳을 상대로 낸 집단 소송에서 "비용부담 합의는 '개별약정'에 해당되며, 불공정한 법률행위라는 입증이 부족하다"면서 모두 원고 패소 판결한 바 있다.

이를 포함해 시중은행은 지난해와 올해 초 선고된 15건의 관련 소송에서 모두 이겼고, 이 가운데는 이번 사건처럼 계약서 상에 수기 표시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