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당국의 감시를 피해 불법약관을 몰래 적용해 중소기업 돈줄을 죄고 이같은 중소기업 대출 축소를 바탕으로 본사 고배당을 강행해 국부를 유출하는 등 '경제민주화'나 '중소기업 육성' 방침에 정반대되는 모습을 보인 씨티은행과 SC은행 등 외국계 은행들이 줄줄이 중징계를 받는다.
'비 올 때(경기가 어려울 때) 우산(대출금) 빼앗기'와 고배당을 통한 국부 유출은 외국계 은행의 고질적 행태로 지적받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당국의 강도 높은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26일 중소기업 대출에 '미확약부 여신약정'(Uncommitted Loan Agreement)을 적용한 한국씨티은행에 대해 고강도 징계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조만간 열리는 금융위원회 회의에서 징계 수위는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씨티은행에는 중징계에 해당하는 기관경고, 하영구 씨티은행장에는 주의적 경고를 내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는 지난 22일에도 같은 혐의로 금융감독원에 적발된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에 기관경고를, 리처드 힐 SC은행장에 주의를 의결한 바 있는데, 특히 하 행장에게 한 단계 높은 주의적 경고가 내려질 것으로 관측되는 이유는 씨티은행이 SC은행의 10배를 넘는 미확약부 대출약정을 운용했기 때문이다.
금감원 검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의 양대 외국계 은행인 씨티·SC은행은 중소기업 대출 6000여건에 미확약부 대출약정을 부당 적용했다.
미확약부 대출약정이란 이른바 '비올 때 우산 뺏기'로 대출한도를 소진하지 않은 약정금액을 은행이 임의로 회수하거나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약정이다.
이는 은행법 등에 어긋나는 것으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한도 내에서 대출금 지급 의무를 지는 '확약부 여신약정'과 달리 자산건전성을 평가할 때 '신용환산률'이 낮거나 없어 은행에 유리하다.
이들 두 외국계 은행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미확약부 대출약정을 맺어왔으며, 이렇게 빼앗긴 대출한도는 금감원 검사에서 파악된 것만 100조원에 육박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두 은행은 일반 대출약관 마지막에 특약 형태의 미확약부 약정을 끼워넣는 수법으로 중소기업에 사실상 약정 체결을 강요했다"고 설명했다.
은행은 떼일 염려가 큰 중소기업 대출을 꺼릴 수밖에 없지만, 다른 시중은행이나 지방은행은 중소기업 자금난을 고려한 정부의 정책적 목표에 동조한 반면, 이들 외국계 은행은 정책 목표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미확약부 약정으로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는 대신 주택담보대출이나 대기업 회사채 투자에 몰두했다.
지난해 국내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30조원 늘리는 사이 씨티·SC은행은 오히려 6000억원을 회수했으며, 이에 따라 두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은 4.3%와 4.8%씩 감소했다.
외국계 은행은 이런 자산 운용으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게 유지해 결산 때 고배당을 추진하는 구실로 삼았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은 우리나라에서 고배당으로 자금을 끌어모아 예대마진이 큰 신흥시장에서 굴려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