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최태원(53) SK 회장이 8일 항소심 첫 공판에서 "펀드 출자금 조성에 관여한 점을 인정한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최 회장은 항소심을 앞두고 변호인을 김앤장에서 태평양으로 바꿨는데, 이에 따라 새 변호인단이 변론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50) SK그룹 수석부회장도 "그동안 수사기관과 재판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말했다.
서울고법 형사4부(문용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항소심 첫 공판에서 최 회장의 변호인은 "펀드 출자금 조성에 관여한 적이 없다는 1심 진술은 사실이 아니다"고 진술했다.
변호인은 "펀드 조성자가 곧 선지급금 인출자로 이어지는 구도에서 어쩔 수 없는 진술이었다"며 "다만 횡령 혐의가 붙은 펀드 인출에는 관여한 바 없고 인출 자체를 알지 못한 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최 회장 본인도 "앞선 재판에서 출자에 관해 잘못 말씀드린 점 사죄드린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최 회장이 진술을 번복하면서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최 부회장도 그동안 펀드 출자와 인출을 모두 자신이 주도했고 형인 최 회장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해왔던 진술을 바꿨다.
최 부회장 측 변호인은 허위진술을 해온 데 대해 "450억원을 잠시 쓰고 상환한 정도면 책임이 낮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사법방해적 행위를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점을 참작해 달라"고 말했다.
법적 책임이 낮을 것으로 판단해 '방어막'이 되기로 하고 거짓말을 해왔다는 것이다.
최 회장 형제 측은 펀드 출자금 선지급 명목으로 SK그룹 계열사 자금을 빼돌린 주체로 '제3자'의 범행 가능성도 언급했다.
김준홍(47)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와 해외 체류 중인 김원홍(52)씨가 주도해 자금을 인출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이에 대해 "비난 가능성이 큰 비리 백화점 같은 행태를 보이며 황당하게 진술을 변경했다"며 "재벌이란 이유로 표적이 된 것처럼 강변하지만 자금출처와 용처를 보면 개인적인 재산 범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