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2.75%로 6개월째 동결하는 대신 정부의 경기부양정책에 공조하기 위해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 지원 강화를 위해 총액한도대출을 현 9조원에서 12조원으로 늘리는 한편 대출금리도 연 1.25%에서 0.5~1.25%로 하향 조정했다.
한은은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지만 바닥을 다지는 수준이고 수출이 증가세를 보이는 점 등 미약하나마 경기회복의 징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금리를 동결하고, 금리인하 필요성을 한 목소리로 강조해 온 청와대, 정부, 여당 등을 향해 김중수 총재가 "경제외적인 요인은 금리결정의 고려요소가 아니다"며 각을 세우기도 했지만, 정부와 엇박자를 낸다는 비판을 다분히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총액한도대출은 금리인하보다 경기부양 효과가 크지 않아 새 정부와의 정책공조가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한은이 경기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한다는 비판도 있다.
한은은 11일 김중수 총재 주재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2.75%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6개월 연속 금리동결이다.
대신 금통위는 담보력이 취약한 중소기업 등에 대한 금융기관의 신용대출 취급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통화신용정책의 또 다른 수단인 총액한도대출을 확대했다.
총액한도대출을 지난해 10월 7조5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 증액한 뒤 반년 만에 규모를 12조원으로 늘리기로 한 것.
한은은 "기술형 창업지원한도 3조원을 신설해 우수기술 보유 창업기업에 대한 은행의 대출 공급이 6조~12조원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금융연구원 임 진 연구위원은 "현재처럼 정부와 한은의 대립구조에선 한은이 (금리도 동결하면서)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는 것은 양측이 극한으로 가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총액한도대출이란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저리의 대출 자금을 시중은행에 공급하는 제도로, 대출대상은 한은이 정하고 은행들은 이 자금에 가산금리를 더해 일반 상품보다 저렴한 이율로 자금을 빌려줘 특정부문에만 유동성을 공급하게 된다. 그간 부채에 시름하는 영세자영업자나 엔저로 고통받는 수출·중소기업이 주 대상이었다.
신설한 '기술형창업지원한도(3조원)'은 특허권이나 정부 인증기술 등 공인 고급기술을 보유하거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이 수혜를 받게 된다. 창업 후 7년이 지나지 않은 기업이 그 대상이다.
김민호 한은 통화정책국장은 "업력 7년을 제한한 것은 고용창출 효과를 높이고 다른 제도와 중복수혜를 막고자 한 것"이라며 "이번 조치로 우수기술을 가진 창업기업에 대한 대출이 6조∼12조원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은은 기존의 결제자금지원한도(7500억원)도 폐지해 무역금융지원한도를 7천500억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늘렸다. 이는 엔화 약세 등 수출중소기업의 채산성·수출경쟁력 악화를 염두에 둔 조치다.
대출금리도 그동안 동일하게 연 1.25%를 적용하던 것을 상품별로 차등화했다. 특히 창조형 창업기업에는 0.5%로 가장 낮은 금리를 제공한다. 김 국장은 "대출금리 인하에 업체별로 0.32~1.22%포인트의 금리감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총액한도대출 증액이 실제로 정책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10월에도 한은은 총액한도대출을 7조5000억원에서 9조원으로 늘려 영세자영업자들을 지원했지만 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의 실적은 404억원에 그쳤다.
한은이 제시한 대출조건인 중소기업의 '기술력' 역시 분명히 해야 하는 부분이다. 특허 등 객관적 요건을 걸어도 그 기술의 가치를 가늠해 대출액을 정하는 것은 결국엔 은행의 몫인데 국내은행이 과연 이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한편, 시장의 금리인하 전망 속에 한은의 총액한도대출 확대 결정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가능성, 일본 아베노믹스로 인한 수출경쟁력 약화 등 불안요인이 있지만 대내외적으로 회복 흐름이 감지돼 금리 인하라는 큰 카드보다는 '미세조정'을 시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총액한도대출 확대의 효과를 자신할 수 없는 데다 금리동결은 정부가 지난달 28일 경제성장률(GDP) 전망치를 종전 3.0%에서 2.3%로 대폭 하향하고 17조원으로 추정되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공식화하는 등 경기부양 의지를 분명히 한 것과 엇박자여서 논란이 예상된다.
김 총재는 이에 "정부는 12조원의 세수 결정을 가정해 수치를 산출했고 한은은 당초 예산대로 결손부분을 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정책선택시기가 다를 수 있지만 같은 방향의 정책조화는 이뤄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일각의 비난을 의식한 듯 "경직된 정책을 펴지 않겠다. 중기적 시계에서 국민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정책을 운용하겠다"며 "북한과 일본 양적완화 문제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보면서 취해야 할 조치는 신속히 취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