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정부가 경기 회복과 민생 안정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안 17조3000억원과 기금 지출 증액 2조원 등 모두 19조3000억원을 투입한다.
앞서 공기업 투자 1조원을 늘린 것을 포함하면 총 20조원이 넘는다.
17조3000억원의 추가경정 예산안은 역대 두 번째인 규모이며, '기금 증액 2조원' 카드는 국회 동의 없이도 가능하다.
추경은 세출 증가와 세입 감소에 따른 재원 조달 규모를 뜻하는데, 총 17조3000억원(세입경정 12조원+세출증액 5조3000억원)은 2009년 슈퍼추경(28조4000억원) 다음으로 많은 규모다.
다만, 이 중에는 세금과 세외 수입의 부족을 메우는 세입 경정 12조원이 들어있는 만큼 순수한 세출 확대는 기금 증액을 포함해 7조3000억원이다.
정부는 16일 이같은 내용의 추가경정예산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 18일 국회에 제출한다.
이에 따라 4·1 부동산대책, 공공기관 투자 증액과 함께 이번 추경 편성이 경기 부양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회 '여야정 협의체'는 4·1 대책의 핵심인 양도소득세 한시 면제와 관련, 집값기준(9억원이하)을 6억원으로 낮추고 면적기준(85㎡이하)을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29개 주요 공공기관의 투자는 52조9000억원으로 애초보다 1조원 늘렸다.
여기에 민생 안정과 경기 회복에 초점을 맞춘 추경이 가세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정부는 이번 추경으로 공공부문 4000개를 포함해 연간 4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정책 패키지 중에 한국은행의 금리인하가 빠진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악화일로인 고용시장을 지탱하고 경기침체와 엔저 현상에 따른 중소·수출기업의 고통을 덜어주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추경으로 올해 예산의 총수입은 애초 372조6000억원에서 360조8000억원으로 11조8000억원 줄어들고 총지출은 342조원에서 349조원으로 7조원 늘어난다.
이번 추경안은 종전과 달리 복잡하게 구성됐는데, 세출을 늘리는 추경에 익숙하지만 이번에는 세입을 확 줄이고 드물게 볼 수 있는 기존 세출의 감액도 함께 이뤄졌다.
당초 추경안은 성장률 하향 조정에 따른 국세 수입 감소분 6조원과 산업·기업은행 지분매각 지연에 따른 세외수입 감소분 6조원 등 세입에서 총 12조원을 메우기로 했다. 세출 확대는 5조3000억원이었다.
세입 쪽에서는 예고한 대로 12조원을 깎아 역대 세입 감액 중에서 최대 규모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추경에서 11조2000억원을 줄인 게 종전 최대치였고,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차 추경 때는 7조2000억원을 잘라냈었다.
애초 예상보다 세금수입이 6조원 줄고 세외수입에서도 산업·기업은행의 주식매각이 여의치 않게 된 점을 고려해 6조원을 쳐냈는데, 이는 정부의 성장률 전망을 예산편성 당시 4.0%에서 작년 12월 3.0%, 지난달 경제전망 수정에서 2.3%로 낮춘 여파다. 연초부터 세수에는 비상등이 켜진 바 있다.
세입을 줄이는 이유는 기존 세출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국채발행 한도는 늘려 수입이 줄어드는 만큼을 보전해줘야 연말에 생길 수 있는 소규모 '재정 절벽'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세출 확대분이 7조3000억원인데도 총지출이 7조원 증가하는 것은 기존 세출에서 에너지·자원 공기업 출자액 등 3000억원을 감액한데 따른 것이다.
경기 부양과 민생 안정을 위해 5조3000억원을 늘렸는데, 세출 증액 규모로는 2009년 추경의 17조2000억원, 1998년 2차 추경의 6조7000억원 다음으로 많다.
여기에 더해 기금 지출에서 국회 의결 없이 증액이 가능한 2조원을 추가 투입하는 카드도 꺼내들었다. 부동산대책을 돕는 국민주택기금 증액이 대표적으로, 이를 포함하면 세출에서 7조3000억원이 늘게 된다. 역대 두번째로 많은 준(準) 슈퍼급 세출 증액이다.
기금 증액은 20% 이내이면 국회 동의 없이 증액할 수 있지만, 20%를 넘으면 국회로부터 기금관리계획 변경안을 승인받아야 한다.
순수한 세출증액분 5조3000억원 중에는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 기금 증액안이 9000억원 포함돼 있다.
기존 세출에서 3000억원을 깎은 것이 눈길을 끄는데, 에너지특별회계에서 에너지·자원 공기업에 공급하려던 출자액 일부를 줄였다. 이는 세입에서 한국은행 잉여금을 2조5000억원에서 2조7000억원으로 2000억원 증액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빠듯한 재정사정에서 재정 건전성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추경 재원을 여기저기서 끌어다 다원화한 대표적 사례다.
세출 확대분의 분야별 내역을 보면 ▲민생 안정 3조원 ▲중소·수출기업 지원 1조3000억원 ▲지역경제와 지방재정 지원 3조원 등이다.
특히 민생안정에 3조원을 투입한 결과 보건복지노동 분야 총지출은 애초보다 2조원 늘어난 99조4000억원이 돼 100조원 문턱까지 올라섰다.
우선 정부는 일자리 만드는 예산을 2000억원 추가 투입한다.
경찰관과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 등 공공부문에서 일자리 4000개를 더하는 것을 비롯해 사회서비스(1만9000명)와 저소득층·노인·장애인에 특화한 일자리(2만8000명)에 이르기까지 총 5만개를 만든다.
연간으로 따지면 예산을 투입한 직접 일자리 1만5000개, 추경에 따른 간접 일자리 2만5000개 등 총 4만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정부는 예상했다. 이에 따라 올해 취업자 증가 수 전망도 25만명에서 29만명으로 높여서 잡았다.
4·1부동산대책 지원 차원에서는 주택 구입·전세자금 융자에 4000억원, 전세 임대주택 8000호를 추가공급하는데 6000억원, 보금자리론 확대를 위한 주택금융공사 출자에 1000억원을 각각 증액한다.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 취득세 면제에 따른 지방세수 감소분 3000억원도 보전해 준다.
긴급복지 생계지원 대상은 4만3000건에서 14만4000건으로 확대하고, 노인과 장애인 등 시설에서 생활하는 기초수급자 생계비 지원단가를 월 17만7000원대로 올렸다.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서는 접경 지역의 경계·방호시설 예산을 1000억원 늘리고, K9자주포 등 무기체계도 보강한다. 사이버 테러에 선제 대응하고자 화이트해커 양성예산 역시 대폭 확대했다.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출연과 무역보험기금·수출입은행 출자 등 총 3000억원을 투입해 중소·수출기업에 총 10조5000억원의 금융지원을 추가한다. 엔저 현상과 경기 침체로 어려운 중소기업과 수출기업엔 단비가 될 전망이다.
추경 재원은 작년 세입 중에서 지출하고 남은 돈인 세계잉여금(歲計剩餘金) 3000억원, 한국은행 잉여금 추가액 2000억원, 세출 감액 3000억원, 기금 여유자금 등을 활용하고, 나머지 16조1000억원은 적자국채를 찍어 조달한다.
이에 따라 올해 일반회계 적자국채 발행액은 8조6000억원에서 24조7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추경에 따른 국고채 물량 부담을 최소화기 위해 조기상환 등 시장조성용 국채 발행물량을 대폭 줄여 총발행 규모를 당초보다 8조9000억원 늘어난 88조6000억원으로 묶기로 했다.
재정수지 적자는 4조7000억원에서 23조5000억원으로, 국가채무는 464조6000억원에서 480조5000억원으로 증가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는 -0.3%에서 -1.8%로, 국가채무는 34.3%에서 36.2%로 올라간다.
추경에 따른 성장률 제고 효과는 올해 0.3%포인트, 내년 0.4%포인트가 될 것으로 정부는 기대했다. 지출 확대로 올해와 내년에 각각 0.1%포인트와 0.2%포인트, 세입 보전으로 0.2%포인트씩의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올해 성장 전망이 2.3%인 점에 비춰 2.6%까지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은 시장에 경기회복 기대를 주기에 충분하다. 경기에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며 "하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3%대 성장을 회복해 연간 전체로는 2%대 후반의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