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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낀 희대의 사기극' 국민은행 100억 위조수표 사건, 해결책은?

[재경일보 박성민 기자] 지난 12일 '은행원이 낀 희대의 사기극'이라 부를만한 국민은행 100억 원 짜리 위조수표 사기 사건의 총책 나경술(51)과 최영길(61)이 붙잡혔다.

공개 수배 중인던 총책 나경술은 이날 저녁 7시 10분 쯤 평소 자주 드나들던 유흥업소가 있는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 주변에서 잠복해 있던 경찰에 붙잡혔다. 검거 당시 나 씨는 이번 사건의 공범 김영남과 밥을 먹고 나오던 중이었으며 격렬하게 저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경찰은 같이 붙잡힌 김 씨로부터 최 씨의 소재를 파악해 다음 날 새벽 1시 40분 쯤 최 씨의 친척집이 있는 부산에서 검거했다.

충격적인 건, 나 씨는 검거 당시 국민은행 한강로 지점 김모 차장을 통해 받은 800억 원의 잔고가 찍힌 통장을 이용해 1000억 원대 또 다른 금융사기 범행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지방경찰찰청 수사과는 지난 15일 100억 수표를 위조해 현금으로 인출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로 나경술과 공모한 최영길 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이미 구속된 김영남(45)과 함께 국민은행 김모(42) 차장을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나 씨는 지난 해 10월 부터 교도소에서 만난 김 씨 등과 이번 사건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 씨는 위조수표 작업에 따른 사전 범행 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사채업자 김덕진(42) 씨를 끌어 들였고 김 씨의 돈으로 100억 원짜리 위조수표의 용지로 쓰인 1억1000만 원 짜리 수표를 지난 1월 국민은행 한강로 지점에서 발행받았다.

사전에 이 지점에서 근무하는 김모 차장에게 접근해 범행에 성공하면 5억 원을 주겠다고 포섭한 뒤 김모 차장을 통해 1억1000만 원의 백지상태의 수표를 건내받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 결과 기존 1억1000만 원 짜리 백지수표의 일련번호는 삭제됐고 컬러 잉크젯 프린터로 100억 원 짜리 수표 발행번호가 입력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최 씨를 바지 사장으로 내세운 뒤 6월 11일 100억 원 짜리 진짜 수표의 일련번호 등 진짜 수표의 정보를 빼내 12일 은행에서 돈을 인출했다. 이들은 국민은행 수원 정자지점에서 위조한 100억 원 수표를 이용해 현금을 인출한 뒤 최 씨의 법인 계좌 2곳으로 50억씩 나눠 이체했다. 입금된 돈은 범행 당일부터 14일까지 명동 주변 은행 등 수 십개 지점에서 인출해 정모(42) 씨 등 7명의 환전책을 통해 한화로 바꿨다.

그럼 이번 사건의 문제점과 해결책은 무엇일까.

◆고객과 은행원만 짠다면…

먼저 은행원이 공범이 되면 이런 사건은 또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사전에 김모 차장으로 부터 금액이 적혀 있지 않은 백지 수표를 달라고, 나중에 위조를 할 것이니 그렇게 해 달라고 모의를 해둔 상태였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은행원인 것이다.

이 사건은 창구에서 일어났다. 당시 김모 차장은 창구 근무를 했는데, 은행에서는 수표 발행 시 그것을 책임자에게 올리게 되면 책임자는 전표와 수표를 보고 수표에 도장을 찍어주는 형식으로 발행이 되는데, 당시 김모 차장이 창구 업무를 봤다. 창구를 빠르게 하려는 그같은 상황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처럼 책임자 없이, 전결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더 큰 사고가 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또 이는 전 금융 기관으로 문제로 보여진다. 백지 수표가 은행원이 마음만 먹으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은행원이 공범이 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사건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또 이와 같은 사건은 어쩌다 한번 일어난 사건이고 수표 용지가 시중에 나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은행원이 공범이 된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잉태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감별기의 한계, 해결점은

그렇다면 감별 문제로 촛점이 모아지게 된다. 사건 과정은 1억1000만 원이 들어오고 수표는 백지로 해서 나갔다. 은행 기계상에는 1억1000만 원이 들어오고 수표는 1억1000만 원이 나간 것 처럼 돼 있었을 것이다.

이후 백지 수표에 빼낸 100억 짜리 진짜 수표의 정보로서 은행에서 돈을 인출됐다. 진짜 수표의 정보를 알고 있으니, 이들이 은행에서 수표를 제시했을 때 전산에서는 당연히 떨렸을 수 밖엔 없었던 것이다. 또 감사가 나와도 걸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후 실제 주인이 돈 달라고 나타난 상황에서 발각이 된 것이었다.

은행권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수표에는 정액 수표와 비정액 수표가 있는데, 정액권 수표란 미리 찍혀 나와 있는 수표로 볼 수 있고, 비정액이란 사채업자 김 씨의 돈 1억1000만 원이 100억 원짜리 위조수표의 용지로 쓰였 듯, 비정액권은 백지를 넣어야 한다. 비정액권인 경우 이 때 흑심을 품고 백지를 빼돌릴 수 있다고 이 관계자는 우려했다.

실제 나 씨는 정액권 수표의 경우 1억, 2억 액수가 미리 찍혀 나와 위조가 어렵다고 판단해 액수가 적혀 있지 않은 비정액권 1억1000만 원 백지 수표를 김모 차장에게 요구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이번 사건의 경우 감별기를 통과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과거 수표의 위조의 대부분이 복합기나 컬러 프린트를 이용해 위조하다 보니 수표 감별기로 쉽게 감별 가능했지만, 수표를 빼돌린 이번 같은 경우는 수표 감별기로서도 감식이 안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감별기가 갖고 있는 한계인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백지를 집어 넣는 순간 부저가 울리게 해야 하고 인지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것이 없으면 제 2, 제 3의 김모 차장은 계속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 이 관계자는 "백지 수표가 단말기에 들어가서 자체적으로 인지하는, 인지해서 수표가 발행이 되는 전산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용된 해당 지점들, 문제점은 없나

위조된 100억 원의 수표를 받은 나 씨 등은 국민은행 수원 정자지점에서 현금을 인출한 뒤 최 씨의 2개 법인계좌로 50억씩 나눠 이체했다. 입금된 돈은 수십개 지점에서 인출했다.

문제는 이들이 국민은행 수원 정자지점에서 100억을 인출할 당시 은행은 조회가 맞았다 하더라도 '의심 거래'로 판단이 안되었을까 하는 부분이다. 또 이 지점은 전과 20범의 나 씨에 대해 신원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100억을 줄 때 100억을 어디서 났는지, 또 어디에다가 쓸 것인지 물었어야 했었을 것이다.

분산 송금을 했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몇 개의 지점에서 인출했을 때도 "어떻게 이렇게 큰 돈이 들어왔느냐"라는 등으로 물었어야 했을 것이다.

이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면 해당 점포에 대한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임영록 회장, 내정 후 몇 일만에 사고 터져

이 사건은 임영록 KB금융 회장이 부임하기 전, 노조가 출근 저지 시위를 하며 갈등 상황 가운데 있을 때 터졌다. 전직 금융 관료이며 모피아 출신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을 거치며 회장에 내정된 이후 몇 일만에 사고가 난 것.

업계 관계자는 "임 회장이 낙하산 타고 내려오고 나서 몇 일 만에 이같은 사고가 났다. 이는 희대의 사기극이다. 은행원의 생명은 '정직'인데, 국민은행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건 심각한 모럴헤저드를 보인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고액 연봉이나 떠들고 말이 되지 않는다. 모럴헤저드 논란이 제기된다면, 낙하산 비난은 연이어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현재 100억 원 변조 수표 사기사건과 관련해 지난 28일 진본 수표의 주인인 대부업자가 국민은행을 상대로 수표금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낸 상황이다. 진본 주인은 국민은행이 변조 수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사기범들에게 돈을 지급했는데도 주인인 자신에게 수표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며 이 같은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1억1000만 원을 맡기고 백지 수표로 받았고, 결국 1억1000만 원을 찾아가지도 못하고 1억1000만 원으로 100억을 탐내다 이루지 못하고 1억1000만 원도 날리는 꼴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