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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업계 또다른 갑·을 논란' 매일유업, 계약내용 전면 수정하나

[재경일보 박성민 기자] 부당계약 논란으로 화물운수노동자들과 마찰을 빚으며 유업계의 또 다른 '갑·을' 논란 촉발 양상을 보이고 있는 매일유업이 계약서 내용을 수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에 따르면 최근 매일유업 물류 본부장이 찾아와 계약 내용을 대폭 수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오는 29일 계약과 관련한 5차 교섭이 진행되는데 이 때 공정한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뜻을 우리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은 "이번 기회에 공정한 계약서가 작성되면 향후 다른 업체들도 표준계약서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며 "만약 5차 교섭이 안 돼 계약서가 수정되지 않으면 매일유업 본사를 찾아가 문제 제기를 하거나 공정위에 고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25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매일유업과 운송사인 삼보후레쉬가 부당한 갑·을 관계에 있다고 판단, 계약서의 독소조항을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을지로위원회 측은 이날 '슈퍼 갑'인 매일유업은 삼보후레쉬를 '갑'으로 하고, 화물노동자를 '을'로 하는 계약에서 거의 모든 부문을 결정하고, 부당 강요를 일삼아 왔다고 폭로했다.

계약서 상에서 문제가 된 내용으로는 ▲운송료는 매일유업이 결정하고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 ▲ 매일유업이 일방적으로 타 공장으로 근무지를 옮기라고 지시하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 ▲매일유업이 정리해고하면 무조건 그만둬야 한다는 것 ▲차량소유주는 화물노동자들임에도 차량매매 등에 있어 '갑'인 삼보후레쉬의 소유물인 것처럼 문서화하고 재산권을 침해한 것 ▲추상적인 사유를 들어 손해배상을 하도록 한 것 ▲단체활동금지를 명문화 하고 이를 이유로 해고하게 돼 있는 것 ▲을은 갑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 등이다.

이날 위원회 측은 "'갑'의 횡포가 심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노비문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위원회는 또 "사측이 요구하는 계약서에 서명할 경우 언제든지 해약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매일유업에서 일하는 화물노동자들은 파업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매일유업 측은 "최근에 제기된 내용을 포함해 운송 협력사인 삼보후레쉬와 합의해 계약사항을 재검토하고 있다"면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내용으로 수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매일유업 제품을 운송하는 화물노동자 130여 명(탱크로리 차량과 냉장 차량)은 운송주선업체인 삼보후레쉬와 위수탁계약을 맺고 있다. 삼보후레쉬는 물류 관리에 대해 매일유업과 계약을 맺는다.

매일유업과 화물노동자는 직접적인 계약 관계에 있지 않은 구조인 것이다. 그럼에도 화물노동자 측이 매일유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갑인 매일유업이 을인 삼보후레쉬를 압박해 불공정계약을 하도록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삼보후레쉬는 1~2년 전 매일후레쉬라는 업체였으며 사업자등록번호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대표와 업체명만 바뀐 형태로 매일유업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 위수탁계약에서 삼보후레쉬가 협상 주체지만 매일유업이 실권을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화물노동자는 차량 운행 방침, 수·배송 운임, 손해배상, 보증금, 운임약정 등의 계약 내용이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화물노동자 측은 "삼보후레쉬와 화물노동자를 '갑·을'로 하는 계약에 대해 '슈퍼 갑'이라 할 수 있는 매일유업이 여러 사안에 개입해 결정하고 부당계약을 강요하고 있다"며 "갑이 지나치게 을을 통제하고 소유권, 자유 보장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물운송노동자 측은 특히 매일유업이 자신들과는 일체의 협의도 하지 않고서 일방적으로 운송료를 결정한 뒤 이를 따르도록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계약서 내용을 보면 화물노동자는 매일유업의 필요에 의해 다른 공장(광주, 경산, 영동, 청양) 파견 또는 지원운행을 요구 시 응해야 하며, 이때 차종별 운임은 매일유업의 산출 규정에 따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운송차량의 수·배송 운임은 매일유업의 노선별 단가표에 의해 지급하고 노선의 신설 또는 변경으로 운임 조정이 필요하면 매일유업의 노선 운임 산출식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은 또 매일유업 측이 일방적으로 근무지를 옮기라고 지시하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상황이며, 정리해고를 실시하면 그만둬야 하고, 이의제기도 못하도록 돼 있다고 말한다. 특히 차주가 화물노동자임에도 '갑'인 삼보후레쉬의 소유인 것처럼 문서화 돼 차량 매매 등 재산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없도록 침해당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 상황이다.

아울러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 단체활동도 금지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23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과 보좌진, 공공운수노조·연맹 화물연대본부, 매일유업 화물노동자 1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던 간담회에서 정한모 홍영표 의원실 보좌관은 "이번 내용을 검토한 결과 이른바 '노예 계약서'란 공감을 이뤘다"며 "노동자들은 노조는 커녕 상조회조차 만들 수 없는 상황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매일유업은 이와 관련, "배송 협력사인 삼보후레쉬와 화물운송 노동자분들 사이에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도록 매일유업이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며 "화물운전노동자들과의 신뢰회복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며 지속적인 협조관계를 유지해 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가 되고 있는 내용들이 전면 수정될 지에 대해서는 오는 29일 5차 교섭 이후 판가름날 것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