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는 SK 최태원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하고, 1심에서 무죄로 풀려난 최재원 부회장에 대해서도 징역 3년6개월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했다.
SK그룹의 총수인 최태원 회장과 동생 최재원 부회장이 동시에 법정구속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총수일가에 대한 형사 재판이 더 이상 그룹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그리고 SK그룹에 다음과 같은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한다.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은 현재 SK그룹 계열사에서 맡고 있는 모든 등기이사직을 사임할 것을 권고한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1월 31일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자신의 형사재판에 전력을 기울여도 모자란 상황에서 최태원 회장은 3월 주주총회에서 SK C&C의 등기이사로 재선임되는 무리수를 두었고, 현재까지 SK㈜,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 등의 등기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최재원 부회장도 현재 SK네트웍스, SK E&S 등의 등기이사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사실관계가 확정됐음을 의미하며, 이제 남은 것은 법률심인 대법원 판결뿐이다. 물론 상고심에서 사실관계 판단에 대한 심리미진 등의 이유로 파기환송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은 크지않다.
이러한 실낱같은 가능성에 미련을 두고 경영공백을 장기화하는 것은 주주들이 위임한 이사로서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며, 1심 선고 당시 회사를 사유화 했다는 재판장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은 형사사건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회사와 주주에 대한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현재 맡고 있는 모든 SK계열사의 등기이사직을 사임해야 한다. 만일 최종 판결에서 자신의 무죄가 확정된다면, 다시 SK그룹 계열사 등기이사로 선임되더라도 이를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만약 최태원 회장 및 최재원 부회장이 자발적으로 이사직을 사임하지 않는다면, 각 회사의 이사회에서는 이사해임 안건을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인신구속으로 인해 이사회에 참석할 수 없고, 횡령·배임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행위를 한 인사가 이사회의 구성원으로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지배구조에 매우 위협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SK그룹도 문제다. 총수일가의 형사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다. SK텔레콤의 예와 같이, 형사사건으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임직원이 등기이사로 선임되는 것을 제한하는 정관 변경을 SK그룹 전 계열사가 채택할 것을 촉구한다.
SK텔레콤은 지난 2000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가 확정된 때'에 이사의 자격이 박탈되는 것으로 정관을 개정했고(정관 제34조 제1항 제4호), 지금까지 동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태원 회장은 SK텔레콤의 이사로 선임되지 못하고 있으며, 최재원 부회장도 등기이사직은 맡고 있지 않다. 물론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총수일가가 등기이사직을 맡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당해 회사에 대한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사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에 기초하여 주주로부터 위임받은 사무를 행하는 위치에 있음을 감안할 때, 이사 결격 사유를 엄격하게 강화하는 것은 주주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SK그룹과 각 계열사는 총수일가의 반복되는 횡령·배임 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마련하여 적극 시행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실추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