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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최근 북한에 제3국에서 대화를 갖자고 제안했다. 이는 지난달 13일 하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북한에 대해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 제재하겠다"고 공언한것과 시기상으로 겹쳐 미 국무부의 의중이 무엇인지 의문을 갖게 했다. 더 이상한 점은 이 제안이 아무런 성과를 낳지 못하고 사그라졌다는 점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국무부의 행동을 '3P'전략으로 소개한다. 3P는 Probe(알아보고), Prod(종용하고), Prove(증명한다)를 말한다. 이 전략의 촛점은 북한의 '진정성 없음'을 대외적으로 드러내 보이는것이다. 가령 북한이 제시하는 비핵화가 진정성이 있는지를 시험해보고,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한 태도를 바꾸도로 종용하며, 그 뒤 북한이 보이는 모순점을 통해 북한의 잘못을 증명하는 등 고도화된 전략적 방법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국무부의 대화신청이 대화교착의 책임을 북한에 떠넘기려는 전략적 포석이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북한은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사전조치를 이행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전제조건을 철회하지 않는 한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특히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일시 중지하면 핵실험 역시 일시 중단시키겠다는 등 대화 재개 프로세스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백악관의 기류는 더욱 더 대북 강경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김 대표가 비록 '협상가'의 위치이기는 하지만, 더 큰 차원에서 대북 정책 방향을 잡아나가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 대표의 이번 대화제안은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가정했다기보다 자국 내에서 제기되는 대북 압박론을 의식해 '미국이 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의 성격이 강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동안 워싱턴 내에서는 북한이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고 핵능력을 고도화하는 상황을 더는 방치하지 말고 탐색적 대화에 나서라는 목소리가 대두되기도 했기 때무에 명목상으로라도 이런 움직임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는 관측이다.
특히 과거 6자회담을 담당했던 스티븐 보즈워스 전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조지프 디트라니 전 6자회담 특사까지 나서 지난달 18일 싱가포르에서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 일행과 회동했다. 국무부는 '트랙 2'(민간) 차원이라고 깎아내렸지만, 북한과의 협상을 총괄하는 성 김 대표로서는 마냥 북한과 대화를 거부하는 모양새로 비치는 것이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게 소식통들의 설명이다.
이 에 따라 김 대표는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을 예견하면서 한·중·일 순방 계기에 북한과 제3국에서 만나 '탐색적 대화'를 갖자는 방안을 제안했고, 북한은 예상대로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대화가 무산됐다고 풀이할 수 있다. 겉으로는 애초 대북 대화를 제의했던 성 김 대표의 모양새가 좋지 못하게 됐지만, 성 김 대표로서는 북한과의 탐색적 대화에 나서라는 내부적 압박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의 한 외교소식통은 "우리는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로 북한과의 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대화 자체가 보상도 아니며 대화를 안하는 것이 제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어 "앞으로도 대화의 문은 열려 있지만, 그 전제는 진정성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비핵화 협상 프로세스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