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 박영옥 여사가 긴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6세.
김종필, 현대 한국사에서 이 사람 만큼 안타까운 이야기를 남긴 정치인도 없을것이다. 그는 두 번이나 국무총리직을 역임한 거물 정치인이었지만, 유독 대통령들에 의해 수모를 당한 탓에 결실을 얻지 못했다.
5.16의 동지였던 박정희는 그를 경계하여 국무총리직에서 경질시켰고, 이후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정계에서 은퇴당했으며, 손을 잡았던 노태우도 김영삼을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김종필을 내쳤다. DJP연합을 꾸려 김대중을 대통령 만들어놨더니 정작 자신은 기반인 자민련이 소수야당으로 전락해버렸다. 30대였던 시절부터 언제나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지만 정작 '3金' 중 대통령직을 꿰차지 못한 것은 김 전 총리 뿐이었다.
◎ 남편따라 50년 정치인생… 영부인 못지 않았던 내조
박영옥 여사 역시 박복하긴 마찬가지였다. 남편의 50년 정치인생을 뒷받침 해왔지만 박영옥 여사는 결국 영부인의 지위를 누리지 못했다. 사촌지간인 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국가수반에 오른 것에 비교하면 오랜 병마에 시달리다 침상에서 영면을 맞은 박 여사의 일생은 다소 안타깝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김 전 총리에게 박 여사는 영부인 못지 않은 든든한 존재였다. 비록 적극적으로 국정에 나서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김 전 총리가 총리 재임시엔 대외 행사에 대리참석하기도 했고, 국무총리 공관에서 의원·국무위원 부인, 외국 대사 등을 초청해 오·만찬을 여는 등 내조를 했다. 때로는 해외에 나가 '부인외교'를 벌인 적도 있었다. 여성운동, 사회복지 운동에 힘쓰기도 했다.
김 전 총재에게 위기의 순간이 오자 정치 전면에 발벗고 나서는 용기를 보이기도 했다. 김 전 총리가 전두환에 의해 부정축재 대상자로 몰려 연행당하자 박 여사는 적극적으로 구명운동을 벌였으며, 남편이 자민련 명예총리로 임명돼 사실성 정치 2선으로 밀려났을 땐 유세현장을 돌며 지원사격을 하기도 했다.
◎ JP의 로맨스, 대통령 당선 부럽지 않은 사랑
박준규 전 국회의장은 모 일간지에서 "그 양반이 여자문제는 참 깨끗해" 라며 김 전 총리의 로맨스를 평한 적이 있다. 그만큼 그는 애처가로 유명하다.
박 여사는 박정희의 형인 박상희의 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소개로 만나 결혼한 둘은 올해로 64년 째 부부의 정을 나누었다. 김 전 총재는 박 여사가 지난 2008년 뇌졸증으로 쓰러진 이후 매일 병원을 찾아 밤 늦게까지 부인의 곁을 지켰다. 지난 8일 자신의 구순(九旬) 기념 행사에서도 간병시간에 맞춰 참석자들을 돌려보내고 아내가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
김 전 총재의 말버릇은 "아내 사랑이 곧 자기 사랑"이었다. 생전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진 박 여사가 쓴 소리를 해도 다 받아주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병상의 박여사가 간혹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때 김 전 총재가 "데이트 신청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며 알아보고 웃었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박 여사의 병세가 심해지자 김 전 총재는 우울증이 걱정될 정도로 상심했었다.
김 전 총재는 "나를 평생 조용히 내조해 주던 반려가 고마운데, 영세(永世)의 반려로서, 끝없는 세상의 반려로서 이곳에 누웠노라고 아내 묘비에 쓸 것"이란 말을 남겼다. 대통령과는 달리 국무총리는 국립묘지 부부합장이 불가하다. 그래서 김 전 총재는 자신이 사후 국립묘지에 안장되는것을 포기했다. 그는 이미 아내와 함께 묻힐 묘소를 준비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