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탄신일과 성탄절, 그냥 휴일이 된 게 아니다.
대한민국 법정공휴일 중 종교적 의미가 있는 기념일은 성탄절과 석가탄신일이다. 두 기념일 모두 휴일로 정착된 지 오래됐지만, 거대 종교 기념일만 휴일로 지정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심심치않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원불교나 천도교 등은 민족종교인데다 신자 수가 10만 명이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종교 기념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지 못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선 종교 기념일을 휴일로 지정하는 문제가 더 예민한데. 유대인이나 흑인 전통 명절 하누카, 카완자 등이 12월 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탄절만 휴일로 지정해 기념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자 형평성을 이유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홀리데이 시즌'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성탄절과 석가탄신일도 휴일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형평성을 둔 종교 갈등이 있었다.
한국에선 석가탄신일보단 성탄절이 1949년에 먼저 공휴일이 됐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뒤 미 군정을 겪으며 관공서 휴일로 지정되었다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던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법정 공휴일인 기독탄신일로 지정됐다. 야간 통행금지가 시행되던 시절에도 12월 25일은 밤늦게까지 돌아다닐 수 있어 젊은이들은 평소엔 불가능했던 밤 데이트를 즐겼고, 이는 성탄절이 연인의 날로 정착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석가탄신일은 26년이 지난 1975년에 법정 공휴일이 되었다. 60년대부터 종교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성탄절만 특별한 이유 없이 공휴일로 지정된 것에 대한 비판이 나왔고, "헌법에 국교(國敎)가 없는데 사실상 기독교를 국교로 지정한 꼴."이라며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하는 사설이 주요 일간지에 실리기도 했다. 토착 전통문화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시기라 시청 앞에 설치한 20미터짜리 트리를 보고 "서양 명절을 기념하느라 세금을 낭비한다."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도 강했다.
불교계에선 "석가탄신일도 공휴권이 있음을 인정하고, 만약 인정되지 않을 땐 성탄절도 공휴일로 지정하지 말라."라는 내용의 위헌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성탄절이 공휴일로 지정됨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권리나 법률상 이익을 침해당한 사실이 없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이 사건이 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남기면서 국무회의에서 석가 탄신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계기가 됐다.
이젠 석가탄신일도 쉬는게 당연해져 이를 둘러싼 종교 다툼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종교계 갈등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을 뿐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2년만 해도 한 교회 목사가 "석가탄신일은 성탄절과 달리 세계적 행사가 아니며, 국민이 낸 세금을 낭비하는 연등행사를 없애야 한다." 라는 내용의 신문 광고를 게재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일이 있었다. 사회가 안정을 찾는 데 기여해야 할 종교 집단이 서로 배격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았던 거다. 쉬는 날이 하루 더 생기면 좋지만 그 과정이종교 간 다툼으로 비화되는 일은 환영받지 못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