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곳곳에 인플레이션 공포가 이어지고 있다.
유가와 곡물 가격이 강세를 지속하며 물가를 끌어올렸다. 국내에서는 소비자 체감도가 높은 농축산물과 가공식품 가격이 뛰고 있다. 반도체 공급난으로 자동차와 스마트폰도 가격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국내외 전방위적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년 만에 가장 높은 세계 식량가격지수…'밥상물가' 자극
'밥상 물가'와 직결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애그플레이션은 농업(agriculture)과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곡물 등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전반적인 물가도 오르는 현상이다.
11월 세계 식량가격이 4개월 연속 상승하며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2일 로이터 통신(현지 시각)에 따르면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조사하는 세계 식량가격지수(2014~2016년 평균 100 기준)는 지난달 평균 134.4포인트로 2011년 6월 이후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27.3% 올랐다.
FAO의 11월 곡물 가격 지수는 전달보다 3.1%, 1년 전보다 23.2% 오르며 곡물 가격은 2011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FAO는 소맥 가격이 호주의 계절적 비에 대한 우려와 러시아의 수출 조치에 대한 잠재적인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유제품 가격 지수는 전월 대비 3.4% 상승해 월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FAO는 "구매자들이 긴축 시장을 예상하고 현물 공급을 확보하려는 수요와 버터와 분유에 대한 글로벌 수입 수요가 지속됐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가격 상승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식량 수출국의 선적 지연 등 공급망 불안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세계 설탕 가격은 이 달에 1.4% 상승했으며 전년 대비 거의 40% 뛰었다.
FAO는 "설탕 가격 증가는 주로 에탄올 가격 상승에 따른 것이다"라고 말했다.
육류 가격 지수는 4개월 연속 하락하여 전월 대비 0.9% 떨어졌다. 세계 식물성 유지 가격은 10월 수준으로 0.3% 하락했지만 국제 팜유 가격은 견조한 수준을 유지했다고 FAO는 전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제 곡물 선물가격(전 분기 대비)은 올해 4분기 0.3%, 내년 1분기 2.3%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적인 밀 공급 부족, 바이오에탄올 생산에 필요한 옥수수 수요 증가 등에 따른 것이다.
지난달 우리나라의 밀, 옥수수, 채유용 콩의 수입단가는 전달과 비슷하거나 최대 8.8% 떨어졌지만, 작년 같은 달보다 18~70% 높은 수준이다.
농촌 경제 연구원은 수입 곡물 가격이 10% 상승할 때 소비자물가를 0.39% 끌어올리는 것으로 분석했다.
11월 소비자물가가 작년 동월보다 3.7% 오른 가운데 생활물가와 신선식품 물가는 각각 5.2%, 6.3% 뛰었다. 특히 농축수산물 물가 상승 폭이 7.6%로 눈에 띄게 컸다.
이에 따라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국은행 전망치 2.3%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다.
▲"탄소중립, 그린 플레이션 동반 불가피"
친환경을 상징하는 그린(green)과 인플레이션을 합한 그린 플레이션도 지구촌 물가에 부담을 키우고 있다.
탄소중립과 같은 친환경 정책이 물가 상승을 유발해 '탄소중립의 역설'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KDB 미래전략 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글로벌 경기 회복세로 야기된 수급 불균형으로 그린 플레이션이 현실화했다"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탄소중립 정책과 관련, 전기차 등의 제작에 쓰이는 친환경 원자재 수요 증가로 공급 가격이 급등했다. 올해 3분기 리튬(395.4%), 마그네슘(290.5%), 망간(102.6%) 등의 가격이 작년 동기보다 크게 올랐다.
중국의 탈탄소화 환경규제에 따른 전력 부족 사태로 현지 공장 가동률이 하락하며 글로벌 원자재 공급이 급감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 해상운송 등 물류 병목 현상까지
여기에 해상운송 등 물류 병목 현상까지 겹쳐 지구촌 물가를 자극했다.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미국 6.2%, 유럽연합(EU) 4.1%를 기록하는 등 각국이 물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31년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강명구 KDB 미래전략 연구소 연구위원은 "글로벌 장기 과제인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일부 그린 플레이션 동반은 불가피하므로 각국은 이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도 그린 플레이션의 영향권에 든 만큼 친환경 원자재 조달에 대한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코로나19의 새로운 변이인 오미크론의 세계적인 확산도 변수다. 확산세에 따라 생산공장 가동이 다시 멈추고 항만 운영 차질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무역 개발 회의(UNCTAD)는 코로나19 사태로 공급망 혼란이 가중되면서 최근 1년 반 사이 컨테이너선 운임이 일부 항로에서 7배로 급등했다며 이런 운임 수준이 이어지면 2023년까지 전 세계 수입 물가는 10.6%, 소비자물가는 1.5%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오미크론 변이가 회복세를 보이는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경우 경기는 가라앉는데 물가는 뛰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악의 경우 내년 1분기 세계 경제 성장률이 4.5%에서 2%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2월 경제동향'을 통해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국내외에서 방역조치가 강화되고 금융시장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등 경기 하방 위험이 확대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