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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첫 회담, 우크라 사태 쟁점 놓고 이견만 확인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의 접점찾기가 험로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이 이끄는 양국 협상단은 1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 8시간 가까운 마라톤회담을 했다.

일단 대화를 계속하기로 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당장 현실화할 우려는 다소 완화했지만 양측의 이견이 팽팽히 맞선 상황이라 해결책을 놓고 상당한 시간 줄다리기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회담은 작년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을 대폭 증강하고, 러시아의 침공을 우려하는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이 강력 반발하는 상황에서 사태 해결의 절충점을 찾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지난달 3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통화에서도 유의미한 진전이 없었던 터라 이번 협상에 큰 이목이 쏠린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양국 모두 우크라이나 긴장 고조 사태를 둘러싼 해법을 적극 제시하는 대신 기존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극적인 돌파구는 없었다.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재확인하면서도 미국과 유럽의 안보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 정책이 러시아를 위협한다며 이를 중단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등 옛 소련권 국가의 나토 가입 금지, 인근 지역에서 나토의 군사적 활동 중단과 중·단거리 미사일 배치 금지 등을 담은 안전보장협정을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등 서방은 개방성이 원칙인 나토 가입 문제는 주권국가인 우크라이나가 자유롭게 결정할 사안이라고 받아치고 있다.

랴브코프 차관은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보장이 절대적인 의무사항이라고 했지만, 셔먼 부장관은 "누구도 나토의 개방 정책을 닫아버리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며 가능성 없는 요구라고 일축했다.

로이터통신은 "양국이 회담 후에도 전혀 다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견을 좁혔다는 징후는 없다"고 평가했다.

바이든,푸틴
[AFP/연합뉴스 제공]

앞서 "몇 주 내 돌파구가 만들어지지 않을 것"(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어떤 양보도 하지 않을 것"(랴브코프 차관)이라며 사전 신경전을 벌인 데서 보듯 이번 회담에서 전격적인 타결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은 애초 높지 않았다.

오히려 12일 NATO와 러시아, 13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와 러시아 간 회담의 시발점으로서 탐색전 성격이 강했다. 미국은 NATO와 OSCE 회원국이다.

셔먼 부장관이 이번 회담에 대해 "협상이 아닌 논의였다"고 촌평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랴브코프 차관도 "불장난이 왜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지 설명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향배는 후속으로 예정된 관련 회담에서 좀 더 구체화하고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랴브코프 차관은 "러시아는 나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영토 내 훈련을 계속할 것"이라고 서방을 압박했다.

실제로 미국은 이날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의 군대 철수 등 러시아의 긴장 완화책을 요구했지만 별다른 답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수출통제와 금융제재 등 이전에 보지 못한 초강력 제재에 직면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도 강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미국은 러시아가 유사한 조처를 한다면 역내의 자국 군대와 장비 배치 문제에 관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나토의 동진 중단을 요구한 러시아가 이 수준에서 수용할지는 불투명하다.

셔먼 부장관은 미국이 유럽의 동맹과 며칠간 협의한 뒤 이번주 말에 러시아와 향후 협상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이번주 회담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향후 프로세스에 관한 합의 도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주 회담의 목표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종지부를 찍는 것이 아니라 향후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프로세스 합의에 방점이 찍혔다는 말로도 들린다.

특히 일부 유럽 국가는 러시아의 보복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우려하는 기류가 있어 미국과 동맹 간 조율까지 고려하면 단시간 내 해소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협상이 교착상태에 부딪혔지만 러시아는 희망이 없는 상황은 아니라고 말한다"며 이번 만남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의 시작일 뿐이라는 셔먼 부장관의 발언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