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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총선 극우 약진…"反마크롱 연합·기존체제 불신"

프랑스 총선에서 유럽의 간판 극우 정치인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 예상외로 선전한 이유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24'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은 19일(현지시간) 치른 프랑스 총선에서 국민연합의 약진에 주목했다.

프랑스 내무부의 하원 결선투표 집계에 따르면 국민연합은 이번 선거에서 하원 전체 577석 중 89석을 장악했다.

2017년 총선에서 고작 8석을 얻은 국민연합은 당초 이번 총선에서 15석 이상을 확보해 의회 교섭단체를 구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했었다.

선거 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국민연합이 10∼45석을 확보할 것으로 추정된 점을 고려하면 기대를 훌쩍 뛰어넘은 결과다.

국민연합은 61석을 얻은 중도우파의 전통적 간판인 공화당(LR)을 제치고 프랑스 의회의 우파 간판이 됐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르네상스당을 비롯한 범여권은 245석을 확보하는 데 그쳐 집권세력으로서 20년 만에 과반의석 장악에 실패했다.

좌파 장뤼크 멜랑숑(70)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가 이끄는 좌파연합 '뉘프'(NUPES)는 예상치(150∼220석)보다 작은 135석을 얻었다.

폴 스미스 노팅엄대 프랑스정치학 교수는 RN의 선전에 대해 "지진에 버금가는 엄청난 결과"라며 "르펜은 대선에서 패배한 뒤로 가망이 없어 보였고 많은 사람이 그녀의 정치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며, 르펜 본인도 총선 선거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르펜이 앞선 대선에서 패해 대권 3수에서 실패했지만 지지율을 한층 끌어올려 마크롱에게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랑스24는 마크롱 대통령이 대중적 인기가 많지만, 좌우 진영에는 마크롱을 냉담하고 미숙한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의 전형으로 여겨 싫어하는 유권자가 많다고 분석했다.

다수 좌파 유권자가 대선에서는 르펜의 당선을 막으려고 마크롱에게 표를 몰아줬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반대로 마크롱을 견제하고자 극우 정당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폴 스미스 교수는 "RN의 선전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반(反)마크롱 연합"이라며 "멜랑숑 LFI 대표는 지지자 단 한 명도 르펜에게 표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는데, 실제로는 많은 지지자가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프랑스 총선 과반 확보 실패한 마크롱 대통령
프랑스 총선 과반 확보 실패한 마크롱 대통령

저조한 투표율(53% 예상)은 기존 체제에 대한 불신을 의미하며 이런 정서가 RN의 선전에 기여했다는 시각도 있다.

앤드루 스미스 치체스터대 프랑스정치학 교수는 "기권은 항의의 한 유형으로 유권자의 환멸을 나타낸다"며 "RN의 성과는 RN의 정책에 대한 지지 못지않게 기존 체제에 항의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RN은 그동안 프랑스 북부 공업지대와 지중해 연안에 국한된 지지층을 전국으로 확대했다고 고무된 분위기다. RN은 이번 선거에서 전통적으로 극우 사상에 적대적인 과들루프섬에서도 선전했다.

필리프 마르리에르 런던대(UCL) 프랑스정치학 교수는 "RN이 프랑스 일부 지역에서 굳건한 지지 기반과 충성스러운 유권자와 지지층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에서 야당으로서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한 뉘프가 선거용 연합정당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RN이 사실상 제1 야당이라는 데 주목했다.

주요 정당으로 급부상한 RN이 의회에서 더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지역 단위 선거에서도 과거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