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고종 열린선원장 무상 법현스님 인터뷰
-“부처님은 마른 똥막대기”
- 탐내고(貪), 성내고(嗔,瞋), 어리석은(痴) 생각이 자신을 괴롭혀
- 27일이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불교란 무엇인가요?
‘부처님은 마른 똥막대기(乾屎厥)’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나라 때 최 고승 선사인 운문문언선사(雲門文偃,864~949)가 하신 말씀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 되는 가르침, 깨닫게 하는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불교 역시 ‘마른 똥막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사진을 보신 적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휴지가 없을 때 썼던 밑씻개입니다. 저것이 쓰고 난 뒤 잘 씻어서 말려둬야 다시 밑을 씻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깔끔하고 기분이 상쾌하니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처님은 어리석은 존재인 중생에게 깨닫는 방법을 지도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였으므로 쓸모없게 된 똥에 젖은 막대기를 씻어서 말린 뒤 다시 깨끗하게 하는 마른 똥막대기 같다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리석어 괴로운 삶인 윤회를 계속하면 안 되니까 깨우침을 줘서 쓸모 있는 존재로 만드는 가르침이 불교 곧 부처의 가르침입니다.
-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찌 들으면 쉽고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요? 모든 종교가 다 그러합니다. 그 시절, 그 동네, 그 사람들이 믿고 따랐던 가르침을 시대에 따라 국제화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해서 널리 퍼지기도 했지만, 힘이 센 사람이 널리 퍼뜨려 사람들이 좋아하게 한 것이기도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시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면 부처님처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이웃 종교들과는 달리 밖에 계시는 절대자, 신께서 행복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하게 한다는 가르침이지요.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탐내고(貪), 성내고(嗔,瞋), 어리석은(痴) 생각이 자신을 괴롭게 하듯이 이웃에게 베푸는 생각, 즐거운 생각, 다른 이가 사랑스러운 자기와 같다는 슬기로운 생각으로 살면 행복해진다는 가르침입니다.
- 부처님은 어디로 오시나요?
부처님은 부처님 나라에 사시는데 제게는 서울 은평구 신사동 열린선원, 평택 서탄면 보국사, 인천공항 2터미날 세계선원, 일본 나가노 금강사 그리고 주한 미군부대인 캠프험프리스 채플홀로 저희에게 오십니다. 부처님오신날 봉축법회를 저와 함께 하는 곳입니다.
- 부처님이 오신 까닭은?
윤회의 굴레를 쓰고 사는 어리석은 중생들도 눈만 뜨면 꽃들이 만발한 극락, 천국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4성 계급으로 뚜렷하게 나뉘어서 차별하고 있는 바라문교(힌두교)의 가르침과 달리 출신이 아닌 생각, 말, 행동이 위상을 결정하며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도 전생의 나의 부모 형제 아닌 이 없었으니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 그 부처님이 언제 우리에게 오시는가요?
현재 우리 사회는 진영 간의 갈등, 세대 간의 불통이 큰 문제라고 합니다. 불통의 세대라도 이어가게 해야 하는데 출산율이 제로에 가까운 사랑 부재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웃 종교의 지도자들도 그렇지만 우리 불교는 자비를 강조하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자비는 지혜 곧 슬기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전혀 다른 사람, 다른 존재를 틀린 사람, 틀린 존재라고 알아 온 어리석음이 내 안에서 걷히면 지혜가 생긴다고 합니다. 그 지혜는 틀린 사람,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 존재라는 것을 알 때 생깁니다. 더구나 우리 가족, 내 친구가 하는 일은 대개가 다 이해되고 공감하지 않습니까? 옳은 일을 한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세상에 자기가 나쁜 일, 틀린 일을 알면서 하는 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렇게 스스로를 제대로 알고 함께 하는 가족과 사회구성원 나아가 지구촌 가족을 아끼고 사랑할 때 오신다고 생각합니다.
- 불교에서 강조하는 가르침이 있다면?
모든 재난영화, 미래영화, 우주 탐험 영화의 공통 주제와 결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의 주제는 이 지구별이 살기 어려워지면 인류가 살아갈 어느 별을 찾는 것입니다. 마치 유럽에서 신천지가 있다면 인도 일 거라고 생각한 콜럼부스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 부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산 사람들 껍데기를 벗기고 죽여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우주를 탐사해 사람들이 살 만한 별을 찾았다고 합시다. 그 별에 사람들이 또는 존재들이 살고 있다면 그들을 죽이거나 쫓아내고 우리가 살아야 할까요? 그러면 안 되겠지요? 그래서 여기를 다시 잘 살펴야 합니다. 언제? 바로 지금! 그리고 사랑스런 마음으로 살펴야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재난영화, 미래영화, 우주 탐험 영화의 공통 주제와 결론이 꼭 같이 ‘지금, 여기 그리고 사랑’입니다. 부처님과 참선하는 선사(禪師)들의 공통 주장도 같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는 스님의 말씀 한 마디는?
부처님은 슬기로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슬기로운 이는 사랑하는 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말 가운데 사랑하는 이를 ‘자기’라고 부릅니다. 자기처럼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뜻이 아닐까요?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사촌들도 사랑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