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정감사를 마무리한 여야가 본격적인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에 들어간다.
31일 국회에 따르면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다음 달 1일 공청회를 시작으로 3일과 6일 경제부처 심사, 7∼8일 비경제부처 심사, 9∼10일 종합정책질의를 각각 진행할 계획이다. 국회 각 상임위원회도 소관 부처의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 착수한다.
내년도 예산안은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원회의 증·감액 심사와 예결위 전체회의, 국회 본회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하지만. 연구개발(R&D) 예산을 비롯해 세부 항목을 둘러싼 여야 간 입장차가 극명해 심사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및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등 쟁점 법안을 두고 여야가 격렬히 대치하는 상황도 예산안 처리 과정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앞서 656조9천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 국회에 제출했다.
올해 본예산보다 2.8% 늘어난 것으로,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로 20년 만의 최소 증가 폭이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긴축 기조에 발맞춰 건전 재정에 방점을 찍고 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3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재정건전성 유지는 미래를 위한 고심 어린 선택이며 2024년도 예산안을 관통하는 기본 철학"이라며 "정부 예산안은 국가부채 증가세에 맞춰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은 현명한 예산안"이라고 강조했다.
여당은 그러면서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소상공인과 청년 등 민생 예산의 중점 확보를 강조하는 한편 최대 쟁점인 R&D 예산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증액 가능성을 내비쳤다.
윤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R&D 예산 증액 가능성에 대해 "정책위의장이 과학기술인들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는 등 정부의 R&D 예산 편성안을 세밀히 검토하고 있다"며 "증액이 필요한 부분은 당의 입장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민생 경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와중에 긴축론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으며 재정 기조의 전면 전환을 요구하고 있어 충돌이 예상된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전날 의원총회에서 "전체적으로 민생 문제, 우리나라의 미래, 국가 경제를 다 내팽개친 예산"이라며 "우리가 예산과 관련해서 제시하는 실질적인 민생대책을 반드시 수용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민주당은 R&D를 비롯해 지역화폐·소상공인 및 자영업자·가계대출 등 지원 예산을 반드시 대폭 증액하겠다는 방침이다.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지역을 살리는 예산, R&D 등 미래를 준비하는 예산 등 필수 예산 삭감은 공약 파기 수준의 '묻지마' 삭감"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지워버린 예산을 복원하고 국민의 희망을 되찾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여야 간 팽팽한 대치 전선이 드리운 정국 상황도 이번 예산안 처리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우선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은 다음 달 예산 국회의 향배를 결정할 핵심 뇌관으로 꼽힌다.
민주당은 다음 달 9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기필코 해당 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지난 26일 이들 법안의 직회부를 무효로 해달라는 청구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하면서 이런 방침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에 국민의힘은 절대 불가 방침을 고수하면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 및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건의까지 거론하고 있다.
야당이 수적 우위를 내세워 법안을 통과시키더라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최근 여야가 체결한 신사협정이 무색하게 정국은 다시 급속히 냉각되고 예산안 처리도 험로를 걸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여전히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겨누고 있는 검찰 수사의 향배도 예산 국회의 정국을 가름할 잠재적 변수로 지목된다.
예산안 처리의 법정시한은 12월 2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편성한 첫 예산안인 2023년도 예산안은 극심한 진통 속에 법정 기한을 22일 넘긴 지난해 12월 24일에 처리됐다. 이는 국회 선진화법이 시행된 2014년 이후 가장 늦게 처리된 것으로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