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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美 보호무역 제물되나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공세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에따라 미국이 조만간 그동안 한미 FTA에서 불공정하다고 주장해왔던 자동차 협상이나 쇠고기 위생검역 협상 내용 등을 바꾸기 위한 '액션'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 행정부가 국제관례에 어긋나고 미국의 신뢰를 상당부분 손상시킬 가능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서명된 협정 내용을 계속 문제삼고 있는 것은 자동차 등 자국 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수 차례 "재협상은 없다"고 강조해왔고 만약 재협상에 나설 경우 한미 FTA에 대한 국내 여론이 악화할 수 있어 조심스런 입장이지만 미국의 재협상 또는 추가협상 요구가 현실화할 경우 어떤 형식으로든 절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 美 보호무역주의 가시화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는 10일 상원 재무위 인준 청문회에서 한미 FTA에 대해 "현재 상태로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향후 미국의 통상정책을 담당할 미 무역대표부 대표 내정자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기존 한미 FTA 관련 발언과는 무게감이 다르다.

 

이에 앞서 미 USTR는 최근 의회에 보낸 보고서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파나마와 체결한 FTA가 상대적으로 조속히 의회 승인을 받기를 바라며 한국과 콜롬비아와 체결한 FTA를 진전시키기 위한 벤치마크(기준)를 만들겠다고 밝혔었다.

 

미국이 이처럼 한미 FTA 수정 필요성을 밝힌 것은 최근 확산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조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이미 지난 1월 경기부양법안과 함께 '바이 아메리카' 조항을 통과시키면서 보호무역주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조항은 경기부양을 위해 미국 정부가 투입하는 건설공사에 미국산 철강만 사용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돼 있어 다른 나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미국 정부의 금융업체에 대한 구제금융도 자국은행에 혜택을 주는 측면에서 보호무역주의 조치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미국은 '바이 아메리카' 조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부조달조약(GPA) 규정 내에서 적용된다며 보호무역주의적인 조치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WTO 금융서비스 규정이 보조금을 다루지 않아 금융업체에 대한 구제금융 역시 WTO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자동차 등 자국내 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미국은 한미 FTA 등 기존 부시 행정부의 통상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미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는 미 정부로부터 174억 달러를 지원받았지만 추가로 대규모 지원을 요청했으며 심각한 경기침체로 인해 차 판매 감소세는 가팔라지고 잇다.

 

GM의 경우 파산보호 신청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포드 자동차 역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출자전환을 통한 대대적인 부채 감축에 나서고 있다.

 
◇ 美 신뢰손상보다 실익 선택
 

미국이 이미 양국 정부간에 도장을 찍은 FTA 문제를 계속 거론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신뢰손상이라는 비용을 치를 수 있지만 당장 자국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국제사회의 신뢰라는 무형의 가치보다 더 크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미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자동차 문제 등을 특별히 언급한 만큼 대내외적으로 공식적인 액션을 취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커크 내정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많은 미국인이 무역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우려하는 것을 단순히 보호무역주의자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모든 미국인이 무역에서 이익을 보는 것은 아니며 교역국들이 항상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아니다"면서 무역확대에 다른 불균형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오바마 행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형식상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지난번 미국과의 쇠고기 추가 협상에서도 알 수 있듯 기존에 서명된 협정문을 그대로 놔두고 양측의 추가 합의내용을 담은 서한을 덧붙이는 형태로 얼마든지 재협상 또는 추가협상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무역투자정책실장은 "재협상은 협정문 자체를 건드리는 것인데 협정문을 건드리면 양국 간 이익의 균형이 깨져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며 "협정문을 건드리지 않고 다른 형태의 기술적 접촉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서 실장은 "일단 우리가 먼저 4월 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해 협정문에 손을 댈 수 없도록 한 뒤 미국과의 논의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어떠한 경우든지 한미 FTA에 대한 수정이 가해질 경우 비준동의안에 대한 국내 여론이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은 양국 모두에 부담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