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인도적 차원에서 진행돼 온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에 대해 돌연 거부의사를 밝혀 미국 행정부가 북한의 의중을 탐색하면서 일단 실망감을 표시했다.
로버트 우드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17일 식량지원을 받지않겠다는 북한의 통보사실을 확인하면서 "매우 실망스럽다"고 언급했다.
미국은 지난해 6월부터 12개월에 걸쳐 세계식량계획(WFP)를 통해 40만t, 머시코 등 5개 비정부단체(NGO)를 통해 10만t 등 총 50만t의 식량을 직.간접 지원한다는 계획대로 대북지원 약속을 이행해 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16만9천t을 전달했고, 가장 최근에는 지난 1월 옥수수와 콩 5천t을 지원했다. NGO들은 이미 5만t을 북한에서 분배했으나, 나머지 2만t은 모니터링 문제 등으로 분배가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이런 와중에 북한의 이번 거부의사 표시로 지난해 2년반만에 재개됐던 미국의 식량지원은 목표의 50%도 채우기 전에 중단될 위기를 맞게 됐다.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돌출 행동'에 나선데 대해 미국은 로켓발사 움직임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 하다.
당장 비팃 문타폰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16일 `북한인권 특별보고서'를 통해 북한 주민 870만명이 극심한 식량부족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 것만 봐도 북한이 식량지원을 거부할 뚜렷한 명분도 실리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미국의 식량지원은 6자회담의 의무사항 이행이라는 `꼬리표'도 없는 만큼 북한이 굳이 거부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워싱턴 외교소식통들은 로켓발사를 앞둔 북한이 미국의 제재카드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선수'를 쳤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미국이 표면적으로는 정치.안보적 상황과 인도주의적 지원을 연계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북한 핵위기와 같은 때는 미국이 대북원조를 크게 줄였던 전례를 고려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지난 2001년 35만t, 2002년 20만7천t의 식량을 지원했으나, 2002년 제2차 북핵위기의 후폭풍권에 있었던 2003년에는 대북 식량지원을 4만200t으로 대폭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칼자루를 미국이 쥐고 흔들기 전에 먼저 칼을 빼버리겠다는 게 북한의 입장으로 해석되고 있다.
여기에다 식량지원과 관련한 `기술적' 문제도 이번 북한의 거부이유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내 식량배급의 투명성을 감시하기 위한 모니터 요원의 배치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17일 북한이 최근 WFP 모니터 요원들을 추방하겠다고 미국측에 통보했다고 보도, 북한의 식량지원 거부가 분배모니터링 문제와 연관돼 있음을 시사했다.
북한은 미국이 식량분배의 투명성을 이유로 북한의 곳곳을 들여다보려 한다는 의심을 가져왔다.
이에 따라 한국어 구사능력이 있는 모니터 요원을 배치할 수 있게 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에 거부감을 보여오다 이를 구실로 아예 식량을 받지 않겠다고 강공으로 나왔을 것이라는 얘기다.
북한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겨놔 앞으로 식량지원 때마다 모니터를 당해야 하는 불편을 차제에 막겠다는 뜻도 있어 보인다.
북한의 식량지원 거부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인 `키리졸브'에 맞선 로켓발사 시험 일정발표, 북한 영공을 통과하는 남한 민항기에 대한 안전위협, 잇단 개성공단 통행차단, 스티븐 보즈워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제의 거부에 뒤이어 나온 것이어서 내부적으로 일정한 시나리오를 갖고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까지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