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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첫 직장은 삼성전자였어요. 정보산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해야 하는데 마침 IMF가 터져서 취직이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114를 통해 삼성전자에 전화해서 ‘직원 구해요?”하고 물었죠. 그랬더니 얼마 후 취직이 돼버렸지 뭐에요”
첫 직장을 구하기 위해 삼성전자에 무턱대고 전화해 정말 우연치 않게 첫 직장을 구했다는 김철균<사진>씨. 그의 경력을 보면 남들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다.
한국재경신문은 현재 온라인 게임업체 ‘게임하이’에서 ‘남들과 다른’ 이색적인 방법로 입사해 일하고 있는 김철균씨를 만나 지나온 얘기를 들어봤다.-편집자주
## 생각지도 못한 게임업체의 입사
2006년 초에 <서든어택> 잽(Zap) 클랜 마스터로 활동했던 김철균씨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유는 클랜원들과 우연히 만들게 된 서든어택 동영상이 클릭수 100만을 넘어갔기 때문. 이 동영상은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하고 구성까지 맡았다.
“당시 신기할 따름이었어요, 코믹하게 잽 플랜 단합을 잘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유저들이 공감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하지만 더 놀랄 일은 이후에 벌어졌다. 그 해 여름 즈음에 서든어택 UCC 공모 이벤트가 열려 회사 측의 제의로 다시 영상을 만들어 제출하게 됐는데, 최우수상을 덜컥 받게 된 것이다.
“당시 여자 캐릭터가 처음 등장한 시기여서 ‘애상’이라고 남녀간에 사랑의 느낌을 영상으로 살려봤는데 회사측에서 잘 봐주신 것 같아요”
그가 만든 UCC가 1위를 차지하자 회사측은 그에게 ‘UCC제작자’로 일해보자는 제의를 해와 망설임 없이 입사를 승낙했다고 한다. 평소 게임을 좋아하고, 음악과 영상 제작에 관심이 컸던 그에게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그리하여서 김철균씨는 ‘서든어택’, ‘데카론’, ‘고고씽’ 등의 게임을 개발한 게임하이 에 정식으로 입사하게 됐다.
## 게임, 음악, 영화..
그의 게임 사랑은 10대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서부터 시작된다. 19세 때 레인보우6의 유명한 동호회 회원이었던 그는 게임 인기가 식으면서 모임도 조용해졌지만, 서든어택 게임이 출시된 후에는 다시 동호회 회원들과 의기투합해 서바이벌 게임 및 MT를 다니며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어느덧 번듯한 직장까지 구하게 된 그에게 단지 ‘행운아’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영상과 음악을 따로 배운 적은 없어요. 군대 제대 후 핸드폰 벨소리 회사에서 음악 작곡, 편곡 쪽에서 일을 했었죠. 그러다가 우연치 않게 UCC에 관심이 생기면서 영상을 만들어 봤어요. 사실 미니캠코더로 일상생활 용도로 편집하는 정도였죠. 음악은 초등학생 때에 기타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많이 가졌어요. 386, 486 컴퓨터 이용 당시 작곡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해서 곡도 만들어 보고 취미로 하면서 즐기게 된 거죠. 이런 밑바탕이 영상 쪽 일을 하는데 크게 낯설지 않았어요”
흔히 취미로 좋아하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다가 기회를 잡아 주업으로 삼게 된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말 그대로 드라마같이 순탄대로였다면 그에게도 할 얘기가 없었을 것이다.
## 우여곡절 끝에 기회 찾아와
“첫 직장이 삼성전자였어요. 그때가 1998년도인데 AS 콜센터에서 근무를 했어요. 그런데 그때 출퇴근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힘에 부쳐 그만두게 됐죠”
그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늘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은 꼭 하자는 신념 아래 취미생활로 음악생활을 즐기며, 모바일 회사에 입사해 프리랜서로 가요, 창작, 재즈 등에서 4년 이상을 일했다. 그 결과 돈이 어느 정도 모아졌다.
“그때 욕심이 나서 주식을 하는 바람에 쫄딱 망하게 됐어요. 주식에 손을 대면서 처음에 많이 흥해서 몇 천까지 모았다가, 더 욕심을 낸 것이 화근이었어요. 온갖 대출회사에서 돈을 끌어 모으다가 원금회수도 못하고 빚만 지게 되는 꼴이 돼버렸죠”
그렇게 1년 동안 주식을 한 후 정신차리고 보니까 주변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대전에 조용한 곳의 어느 택배 회사에 취직해서 대출금을 갚으며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음악 일을 조금씩 시작했다는 그는 위기를 기회로 살려 게임하이에 스카우트 되어 입사하게 된다.
“사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돈을 못 받은 적도 많고, 대출 갚아나가는 것도 많이 힘들었을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그래도 늘 '좋아하는 것 해야지'라는 생각이었죠. 저녁 9시에서 오전 6시까지 일하는 '택배원'으로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힘든 일을 한다'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참 힘든 일을 하고 있구나' 하면서 나태해지는 자신을 바로 잡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요즘 취업이 잘 안돼서 자포자기하고 희망을 찾지 못하는 분들에게, 빚이 많아서 힘든 일을 하는 분도 많은데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하나라도 도전을 해보면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제안해 본다.
“저는 회사에서 잘리거나 망해 직장을 잃더라도 아무 일이든 찾아 나서 해볼 자신은 있어요. 여태껏 살아오면서 한번 해본다는 마음으로 첫 직장도 114에 전화해서 찾은 것이고, 포기하지 않고 몸으로 직접 부딪히니 되더라고요”
## 음악은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해
그는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공부를 제대로 하려고 했으면 스쿨아카데미나 학원을 다녔을 텐데 현실을 헤쳐나가다 보니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고 하는 그는 약속을 정하고 시간에 맞춰서 배우는 것이 힘든 부분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처음에 아는 게 뭐가 있겠어요. 중학교 때였으니까 작곡 프로그램 설치해서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음악의 기본을 닦게 되었어요. 또 작곡도 하게 되면서 다양하게 악기 연주를 배우게 되었죠”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것에 열중한 결과 그는 고3때 제 1회 작곡 컨테스트에 참가해 운이 좋게 입선하게 되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총 120명이 참가한 대회에서 최연소자로 참가해 입선자 20명 안에 들어가게 된 것. 그때 입선자 중 황성재 작곡가 등 현재 활동하는 작곡가들이 많이 있다고 귀띔하기도 한다.
“음악에 대한 미련은 많이 있죠. 영상 일을 하면서 혼자 취미로 작곡 일을 하는데, 사람의 감수성을 깨우는 음악을 만들기가 생각보다 힘들어요. 배울 것도 많고 저에게는 영원한 숙제죠. 현재 앨범은 기획하고 있는데 함께 작업하는 아는 형과 자본금이 모이면 앨범 낼 계획도 있어요. 근데 사람이 창작을 하면서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쫓기면서 하니 발상 자체가 어려운 면도 많아요”
“꿈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죠. 어느 분야서 최고보다도 집 한 채 있고, 음악실을 따로 만들어 놓고, 여자친구가 그림 그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고 행복하게 지내는 거에요”
현재 여자친구와 놀이동산, 공원 등지에서 조그만 커리커쳐 사업을 하는 것도 여자친구가 마음 놓고 그림을 그리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 밤을 새도 일 자체가 즐거워..
“게임하이라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비전을 확신하고 있어요. 이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평일에는 회사 일을 하고 있고, 주말에는 여자친구와 일을 하고 있는데, 별로 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재작년까지만 해도 놀자는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은 일하는 것이 노는 것처럼 재밌고 즐겁거든요”
또한 영상을 찍고 보고 편집하는 즐거움이 크다는 그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영상을 만들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등 지겨울 새가 없어요. 하지만 지금 영상 일을 하면서 나중에 다른 일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저 지금 하는 일이 좋을 뿐이에요. 나중에 계속 이것으로 먹고 살 생각은 없어요. 지금 하는 일이 즐거워 밤을 새도 즐거워요”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하는 김철균 씨. 첫 직장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지도 못하게 다양한 경험을 한 그에게 남다른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열정과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는 것은 자신의 열정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