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기후협약을 마련하기 위한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가 7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막된다.
18일까지 열리는 이번 회의에는 세계 105개국 정상들이 참여해 더 미룰 수 없는 인류 최대의 과제인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한 대타협을 모색하게 된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현격한 견해차, 그리고 인류 공멸의 위기를 앞두고도 자국의 득실만 따지는 국가 이기주의로 인해 회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개막을 앞두고 각국 정상들이 속속 참석을 발표하면서 적어도 내년 최종 타결을 위한 큰 틀의 정치적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가장 큰 역사적 책임이 있으면서도 교토(京都) 의정서에 불참해 지구 환경의 '공적'이 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으러 노르웨이에 가는 길에 '얼굴을 내밀려던' 당초 일정을 바꿔 마지막 날 참석하기로 한 것이나, 마지못해 온실가스 배출 감축 계획을 내놓았다는 비판을 받은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가 참석을 확정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정상이 참석하는 105개국은 세계 인구의 82%, 국내총생산(GDP)의 89%, 온실가스 배출량의 80%를 차지한다. 1997년 교토 의정서가 채택될 당시에는 단 1개국 정상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105개국이라는 숫자는 '인류 파멸의 마지막 기회'를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합의가 이뤄질 경우 온실가스를 억누를 수 있는 인류 이성의 강력한 무게를 상징한다.
과학계의 일반적인 분석이 맞다면 인류는 지구온난화라는 유례없는 환경 재앙을 방치할 경우 파국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주최국인 덴마크는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에 비해 2℃ 이내로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 2020년을 온실가스 배출의 정점으로 만들고, 205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50%(1990년 대비) 감축하는 방안을 참가국들에 제시했다.
이에 대해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들이 선진국들의 역사적 책임을 거론하며 거부입장을 밝혔지만 '정의로운 책임 배분' 문제와 관계없이 덴마크의 제안이 이번 회의에서 진행될 논의의 뼈대가 될 전망이다.
라르스 뢰게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온실가스 감축안에서 각국이 이번 코펜하겐 회의를 통해 '정치적으로 구속력있는' 합의에 이르기를 바란다면서 내년을 합의 시한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는 인류의 힘으로 온난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한 내에 세계 각국이 책임을 공유함으로써 눈앞에 닥친 재앙을 최대한 피해보자는 것으로, 2012년 만료하는 교토 의정서 이후 각국의 구체적인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치를 도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선진 38개국이 2008~2012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보다 5.2% 감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교토 의정서가 1997년 회의에서 채택돼 2005년에야 발효됐으며 실제 배출 감축 돌입시기는 이보다 3년 후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회의에서 합의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2013년부터 실행에 옮기기에는 시간이 빠듯한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의가 결렬될 경우 지구 온난화는 '2℃'라는 문턱을 넘어 인력(人力)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면서 인류가 가까운 장래에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것이 환경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이견은 여전하지만 개막이 다가오면서 합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유럽이 비교적 적극적인 자세로 논의를 주도하고 있으나 자국산업 보호를 이유로 교토 의정서에서도 탈퇴했던 미국은 여전히 내부갈등에 시달리고 있으며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들의 기후변화 관리를 지원하기 위한 돈을 누가, 얼마나 내야 하는 문제도 아직 뚜렷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은 이번 회의에서 포괄적인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낸 뒤 내년 6월 독일 본이나 12월 멕시코시티 회의에서 협약을 체결하는 수순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세계 1, 2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과 미국 지도자가 참석한 가운데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각국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새 기후변화 협약의 체결을 사실상 내년 이후로 미루기로 의견을 모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지난달 27일 "코펜하겐에서 성공이 가시화되고 있다"면서도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정을 마련하기 위해 매우 실질적인 기초를 놓을 것"이라고 말해 타결보다는 타결을 위한 준비에 방점을 뒀다.
중국과 미국, 인도 등 각국이 회의를 앞두고 미흡하지만 감축 목표치를 제시한 것은 고무적이다.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전체 배출량의 약 21% 정도를 차지하는 중국은 지난달 26일 2020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단위 기준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40~45%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원이 지난 6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2005년 수준의 17%, 2050년까지 83% 감축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던 미국도 이번 회의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나라는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4% 줄이는 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것은 2020년 국내에서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온실가스량(배출전망치·BAU)과 비교하면 30%를 감축하는 수준이지만 교토의정서가 기준시점으로 잡고 있는 1990년보다는 훨씬 높은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또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선진국)으로 편입될지도 관심거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의무감축국이 아닌 나라는 한국과 멕시코뿐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GDP 규모가 세계 15위이며 지난 10년간(1990~2000년)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은 세계 11위, 1990~2005년 배출 증가율은 99%로 OECD 국가 중 1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