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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만의 현대차 무파업 어떻게 가능했나

현대자동차 노사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을 무파업을 통해 잠정합의하는 '신기록'을 만들어냈다.

정치파업이든, 임단협 과정에서 벌어진 파업이든 현대차노조가 단 한 차례의 파업 없이 한해를 넘기는 것은 1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파업을 벌여왔던 현대차가 이처럼 무파업까지 할 수 있었던 배경에 안팎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역의 경제계와 시민들은 올해 무파업을 계기로 국민기업인 현대차가 앞으로도 노사상생을 통해 새로운 선진 노사문화를 정착시키길 기대했다.

◇ 15년 만의 무파업 합의 과정과 배경은 = 현대차 노사는 올해 안팎으로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말부터 금융위기로 인해 현대차는 정상적으로 생산라인을 가동하지 못했고 일부 라인의 근로자는 휴무까지 했다. 이런 와중에 노사는 지난 4월 올해 임단협을 시작했다.

하지만 6월 임단협안을 놓고 노조 내부 갈등이 빚어져 집행부가 전격적으로 중도사퇴를 선언했다. 결국 노사협상은 새 집행부가 들어서기까지 5개월간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17일부터 임단협은 재개됐고 협상테이블에 다시 앉은 지 한 달여만인 21일 잠정합의안을 만들어냈다.

이는 노사 모두 5개월간 중단된 임단협을 다시 시작하면서 반드시 연내에 타결하겠다고 공언했고 노조도 새 집행부가 선거공약 1순위로 연내 타결을 약속한 데 따른 것이다.

회사 또한 임단협을 내년까지 끌어가며 노사협상에만 목을 매달 수 없는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노사 모두 연내 타결이라는 공동목표와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집행부 사퇴로 미뤄진 임단협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모든 조합원이 바란다는 것을 노사 모두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1994년 이영복 전 위원장 이후 15년 만에 들어선 합리 노선의 새 집행부의 영향도 없지 않다. 이경훈 현대차지부장은 무조건적인 파업, 파업을 위한 파업보다는 조합원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겠다면서 끝까지 대화를 통한 교섭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올해는 임금뿐 아니라 단협안까지 다뤄야 했지만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었던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안(현행 주.야간 2교대제) 등을 내년으로 넘기면서 사실상 별다른 쟁점이 없었던 점은 무파업을 통한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 현대차 무파업 어떻게 평가되나 = 현대차 노조는 1987년 노조설립 이래 거의 매년 파업했고 지난해까지 이 때문에 112만대의 생산차질과 11조6천682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회사는 집계하고 있다.

노조는 그러나 지난 1994년 이영복 노조위원장 시절 유일하게 한 해 동안 한차례의 파업도 하지 않았다. 당시 임단협 과정에서는 파업 찬반투표까지 갔었다.

이후 1997년에는 노동법 개정반대 정치파업만 벌였고 임단협 중에는 파업은 하지 않았다. 꼭 10년 뒤인 2007년 다시 임단협을 무파업으로 마무리했다. 이처럼 1987년 현대차 노조 설립 이후 3차례의 임단협에서 무파업의 기록을 남겼을 뿐이다.

결국 1994년 이후 15년 만인 올해 또다시 무파업을 달성한 것이다. 노조가 과거 무분별한 분규를 지양하고 조합원 권익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다는데서 올해 임단협 무파업은 또다른 의미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파업 전단계인 조합원 찬반투표도 없었다.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신청은 냈지만 이는 협상기술로 던진 회사 압박용 카드였다.

또 대의원대회를 통해 소위 '파업결의'마저 없었다. 결국 올해 최초로 파업 결의나 파업 찬반투표가 없었고 실제로 파업도 없이 완전 무분규를 실현한 것이다.

조합원 역시 임금손실이 전혀 없어 실질소득이 늘어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됐고 회사 역시 그동안 매년 파업으로 인한 막대한 파업손실과 실추됐던 대외신인도 회복과 브랜드 이미지 상승 등 무형효과도 얻을 수 있게 됐다.

임금동결안 때문에 막판에 노사간 힘겨루기까지 갔지만 결국 서로 조금씩 양보교섭을 통해 접점을 찾았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국내 강성 노조의 대명사이던 현대차노조와 재계를 대표하는 현대차가 성사시킨 이번 합의는 다른 기업의 노사협상 문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합의안을 두고 평가가 엇갈리지만 노조와 회사 구성원의 피땀 어린 노력에 대한 보상의 성격이 일부 깔려있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 향후 노사관계 전망은 = 올해 현대차의 무파업을 통한 합의는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노사가 양보하려는 자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만큼 각계에서는 앞으로도 현대차가 양보를 통해 성숙한 협상 문화를 정착, 선진 노사관계를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울산시의 노사업무 담당자는 "상생문화를 보여주는 굉장히 획기적인 협상"이라면서 "무분규 합의는 어려운 경제상황을 이해해서 조금씩 양보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협력회의 엄수영 사무국장은 "2009년이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 노사관계에서 연례적인 파업 없이도 원하는 것을 이루는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올해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던 점이 무파업을 하는데 적잖은 역할을 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내년에도 경제사정 등을 감안하면 이런 협상 분위기를 다시 연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내년엔 다시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안을 다뤄야 한다. 내년 하반기까지 유예된 복수노조 사안도 향후 현대차 노사관계에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있다.

15년 만에 들어선 현대차 노조의 합리 집행부가 올해 조합원 권익과 고용보장까지 '챙길 것은 챙기면서' 15년 만에 파업 없는 한해를 만들었지만 만만찮은 노동현안이 예고된 내년의 노사관계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