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다음은 이 총재와의 문답.
--가계부채 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는데 심각한가.
▲가계부채를 거론한 것은 사실 가계부채를 중심으로 한 우리 경제의 자금 흐름, 자원 흐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주원인이 주택담보대출이고, 이로 인해 늘어난 유동성의 상당 부분이 주택구입 또는 교체 쪽으로 쓰이고 있다. 주택 쪽으로 흐르는 자원의 흐름이 우리 경제의 현재 발전 정도나 소득 수준, 현재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 할 과제에 비춰볼 때 바람직하느냐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소비나 미래의 소비를 위한 자원 투자는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사용돼 미래에도 높은 소비생활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고 효율이 낮아 미래에 도움이 덜 되는 투자도 있을 수 있다.
주택 투자도 투자지만, 현재와 미래 사이의 균형에 너무 현재 쪽에 치우쳐 있지 않은가, 생산성이 그렇게 높지 않은 부문에 자원을 너무 많이 투입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봐야 한다. 그 경로에 주택담보대출이 있고 가계부채가 있다. 당장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어느 위치에 있고, 장기적으로 원하는 궤도에서 너무 멀리 이탈한 것은 아닌가 살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개인 부문 가처분소득의 140%가 가계부채라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자원배분에 있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가계부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금리 오르면 재무부담이 늘어나니까 가계부채 부담이 무거우면 금리를 올리면 곤란하다는 쪽으로 해석하는데, 이는 경제학 교과서와 정 반대다. 부채가 많으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
부채를 자기 수준에 맞도록 조정하게 하는 것이다. 단 지금 치료를 하려고 환자를 위험한 상태에 빠트려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금리와 부채의 문제는 가계부채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국가 부채도 똑같은 문제다.
해결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더 많은 부채를 유발하는 요소들을 예방해줘야 할 것이고, 이미 많아진 가계부채를 짊어지고 가는 데서 오는 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있다.
부채구조를 장기적으로 해서 부담을 분산시키거나 위험평가를 발달시켜야 하는데 1~2년 안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국가부채가 1~2년 내에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2000년대부터 시작해 10년간 지속된 문제로 풀어가는 것도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물가상승률이 낮았는데 자산 거품이 생겼다.
▲자산 거품의 징후가 잡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지난 10년 사이 토지가격, 주택가격, 특히 도시지역 주택가격이 많이 상승해서 우리나라 소득 수준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와 있다. 우리가 경계하는 것은 그 동안 높아진 가격 수준이 계속 더 올라가면 곤란하다는 쪽이다. 기준금리 2%, 국채금리 4%대, 은행 예금금리 4%에 대출금리 5~7%가 계속되면 지금은 아니지만 혹시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발생하고 빨리 확산할 가능성은 없느냐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갖고 있다. 작년 봄부터 가을까지의 경우처럼 한 달에 0.5~1%씩 오르는 상황이 계속되면 곤란하다.
--금통위의 금리인상에 대한 공감대는.
▲지금의 통화정책 기조가 상당히 완화적이고, 민간 부문의 자생력이 확인되면 완화의 정도를 점차 줄여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시기에 대해 특별히 합의했다는 뜻은 아니다. 금년 상반기다, 하반기다, 내년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국회에서 개인적으로 (금리 인상이) 크게 멀지는 않다고 말했지만, 7명 위원이 모두 합의한 것은 아니다.
--외화자금 유출입 통제에 대한 견해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금융 자유화와 세계화가 지배했다. 규제는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고, 최대한 시장 자율에 맡기는 게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고 해 왔다. 그런데 경험해 보니 시장 실패의 충격이 커질 수 있는 소지를 미리 줄이려면 약간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 유출입을 통제하려면 첫째는 기업이 다소 불편을 겪어야 하고, 둘째로 이를 중개하는 금융회사들이 다소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를 당국이 해소해야 한다. 기업과 금융회사가 자본 유출입을 마음대로 하면 당국이 외환보유액을 쏟아부어 다 해결해야 한다. 세계화된 국제금융 환경에서 기축통화국이 아닌 입장에서는 자본유출입에 국가적으로 대처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본격적 자본 유출입 자유화는 10년 정도 됐는데, 시장에 모든 것을 다 맡겨놓기에는 국가적으로 너무 충격이 크다는 것을 배웠다.
--정부의 열석발언권 행사에 대한 의견은.
▲열석발언권은 새로운 흐름은 아니다. `옛날에 있던 것`이 살아난 것이다. 나중에 만들어진 중앙은행들은 그런 제도가 없는 곳이 많다. 사회의 진보를 직선처럼 한 방향으로 보느냐, 원처럼 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열석발언권이라는 제도 안에서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달 말 임기를 마치는 소회는.
▲2006년 4월 취임해서 2007년까지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가장 관심사는 부동산 가격 상승, 외자 유입, 환율 하락 등이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통화정책 면에서 금리 수준이 너무 낮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적합한 수준으로 정상화하는 쪽으로 관심을 뒀다. 결과적으로 2008년 9월 리먼 사태가 터지자 외자가 엄청나게 유출되고 900원대까지 내려갔던 환율이 1,500원까지 올라가는 등 큰 요동을 쳤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전 세계적 금융위기로 우리 경제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는 게 안타깝다.
2008년 9~10월 초기 단계에서 상황의 깊이나 충격의 크기를 판단하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그래서 당시 대응의 속도나 크기를 두고 여러 가지 평가를 할 수 있겠지만, 2008년 10월 이후 작년 2월까지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큰 충격에 가장 크고 빠른 속도로 대응했다.
중앙은행 통화정책을 하는데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은, 큰 배는 방향 전환이 빨리 안 되기 때문에 가속도, 감속도, 회전도 급격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리 조금씩 움직이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또 하나는 당장 눈앞에 닥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좌우를 자주 오가면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제대로 된 궤도에 있는 것인지, 혹시 이탈한 것은 아닌지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항상 현재 위치가 원래 가야 하는 궤도 근처에 있는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미래를 모르고 사람마다 생각도 달라서 미리 조금씩 움직여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설득과 합의가 그렇게 쉽지 않았다. 궤도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느냐 하는 데 대해서도 사전적으로 검증이 안 되고 사후적으로도 검증이 잘 안 되는 문제라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지난 4년간 한국은행 금통위가 했던 여러 행동은 여러 가지 해명이나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 놓고 평가를 받는 게 옳다는 생각이다.
--시장에서는 총재의 소신이 꺾였다고 했다.
▲통화정책은 소신으로 하는 게 아니다. 중앙은행은 정치적 이념을 대변하는 곳도 아니다. 전문가적 견지에서 전문가적 평가를 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어떤 결정을 하는 게 가장 좋을지를 판단한다. 소신을 지켜도 대한민국에 이롭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상황이 바뀌면 소신도 바뀌어야 한다. 또 통화정책은 혼자서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총재 개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데 비결은 무엇인가?
▲신뢰를 쌓는 것은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을 항상 일관성 있게 하고 행동이 그 말을 뒷받침해주는 게 가장 믿음을 얻는데 중요한 것 같다. 총재를 하면서 보니 여러 곳에서 다른 신호들이 나오는데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해명하면 그 해명이 다른 오해를 불러오기도 했다. 나라 전체를 운영하는 데 정제되고 절제된 의사소통이 있으면 신뢰를 얻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봤다. 신뢰를 얻는 것은 일관성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