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은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강수진 갈라-더 발레(The Ballet)’를 통해 7개의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 관객들에게 자신의 발레 인생의 모든 것을 드러냈다.
강수진의 대표작 중 하나인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함께 공연했던 세 명의 로미오(제이슨 레일리, 마레인 라데마케르, 이반 카발라리)가 참여하고, 17년 만에 다시 무대에서 재회한 첫 번째 로미오가 예술 감독을 맡고 있는 서호주 발레단도 등장한다. 강수진의 직계와 방계가 모두 드러난 셈이다. 특히 클레식과 모던을 아우르는 네오 클래식 레퍼토리를 앞세운 이번 공영은 강수진이 기획단계부터 참여해 신중하게 작품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아름다움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이미 불혹을 훌쩍 뛰어넘은 나이, 보통 발레리나라면 십여 년 전에는 은퇴를 했어야 할 나이이지만 강수진은 이번 갈라에서 선보이는 7개의 공연 중 4개의 작품에 참여했다. 또한 그는 라흐마니노프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제2번’을 소재로 우베슐츠가 안무한 ‘스위트 No.2(Suite No.2)’와 이반 맥키 안무의 ‘베이퍼 플레인(Vapour Plains)'에 도전했다. 이 작품들은 강수진의 도전작이자 한국에서도 초연이다.
‘스위트 No.2’ 는 4개 악장으로 구성된 곡으로 피아노 건반을 상징하듯 흰색과 검은색으로 꾸며진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20분이 넘어가는 다소 긴 시간동안 공연을 선보인다. 각각의 장에서 2인무, 3인무, 6인무를 선보이는 이 곡은 ‘음표들의 춤’ 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음악에 대한 안무가의 뛰어난 해석을 느낄 수 있다. 서로 마주본 피아노를 형상화하듯 각 무용수들은 똑같은 동작을 구사하는가 하면 곡의 박자와 장단에 맞춰 리듬을 움직임으로 표현해 낸다. 특히 강수진은 멜랑콜리한 3악장에 등장, 두 명의 남자 무용수와 함께 음악의 바다를 헤엄치는 모습을 선보이며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한 이 갈라 공연에서 강수진은 5분이라는 시간동안 남성무용수가 여성무용수를 계속 들고 있어야 하는 ‘베이퍼 플레인즈’에도 도전했다. 2008년 한국에서 공연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로 출연했던 제이슨 레일리와 함께 출연한 이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경이롭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남성이 여성을 들어 올리는 앙 레르망이 탁월한 작품이다. Vapour는 수증기, 광활한 대지를 뜻하는 Plains의 모습처럼 행성을 품어내는 두 존재는 신비로운 음악에 맞춰 포옹하는가 하면 미묘한 긴장감도 함께 드러낸다. 특히 이 작품은 자연의 근원을 엿보는 듯한 경외심과 함께 서로의 애정과 헌신에 대한 감동을 전한다.
◆ 쇼팽탄생 200주년 기념, 강수진의 대표작 ‘까멜리아 레이디’를 만나다
알렉산드르 뒤마의 ‘춘희’를 원작으로 한 까멜리아 레이디는 강수진의 대표작이자 1999년 그녀에게 최고무용수의 영예인 ‘브누아 드 라 당스(bnois de la danse)’ 최우수 여성 무용수상 수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오페라로는 베르디가 작곡한 ‘라 트라비아타’와 같은 작품이지만 ‘까멜리아 레이디’의 안무가 존 마이어는 쇼팽의 음악을 택해 발레음악이 아닌 명곡으로 작품을 꾸미는 현대발레의 유행을 반영했다. 올해가 쇼팽의 200주년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강수진의 역사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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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멜리아 레이디' 공연사진 |
이번 공연에서 강수진은 2006년 함께 ‘까멜리아 레이디’에 출연했으며, 2008년 한국 공연에서 로미오를 맡았던 마레인 라데마케르와 함께 다시 2인무를 선보였다. 총 3막으로 된 이 작품은 시간상의 제약으로 아쉽게도 3막의 파드되만을 선보인다. 여주인공 마그리트(강수진)가 연인인 아르망(마레인 라데마케르)의 오해를 풀고 사랑을 재확인하는 이 장면은 서정성과 함께 사랑의 열정이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금발의 라데마케르는 건강을 해친 처연한 모습으로 나타난 강수진을 외면하지만, 그녀의 사과에 마음을 풀고 다시 사랑을 나누게 된다.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관객이라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장면을 강수진은 섬세한 표현력과 카리스마로 공연의 내용을 온몸으로 전달하며 무대 속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20년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7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역사상 단 4명에게만 주어진 ‘캄머탠저린(Kammertanzerin 궁중무용가)’ 지위를 받은 강수진의 경험과 재능을 드러낸 작품이다.
◆ 네오클래식, 발레를 몰라도 재미있는
강수진은 이번 공연을 시작하면서 “고전작품 이외의 것을 선보이고 싶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어려운 현대작품으로 관객을 괴롭히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기자간담회에서는 “앞으로 고전발레를 할 계획은 없다. 이번 갈라에서도 나의 특징을 살리고자 노력했고 그런 작품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앞서 소개한 작품에서 두 명의 젊은(?) 로미오와 공연한 강수진은 17년 전 줄리엣으로 첫 주역을 맡았던 당시 로미오 역으로 함께 주역으로 데뷔한 이반 카발라리와 지리 킬리안이 안무한 ‘구름(Nuages)'를 1992년 이후 다시 선보였다. 발레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도 두 남녀 무용수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구름과 같이 만나고 헤어지고, 사그라지는 모습을 담아낸 곡으로, 2인무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평가되는 안무다.
특히 3명의 로미오는 각각 자신의 무대를 통해 ‘재미있는’ 공연을 선보였다. 이반 카발라리는 유명 팝송 ‘마이웨이(My Way)’에 맞춰 두 남자의 우정과 인생을 그렸다. 서로 부딪히기도 하는 두 남자는 쓰러졌을 때 일으켜주고, 넘어지기 전에 지지해주는 모습으로 보는 이들의 진한 감동을 자아낸다. 보통 가사가 없는 곡을 사용하는 발레에서, 그것도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친숙한 곡을 배경으로 했기에 관객들은 친숙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젊은 두 명의 로미오는 관객을 압도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마레인 라데마케르는 ‘에피(Affi)’라는 다소 기괴한 느낌의 작품에서 상의를 벗고 나오며 근육의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자장가에서 팝까지 다양한 곡에 맞춰 남성의 뒷모습을 강조하는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상체의 움직임, 머리, 손가락 등을 진동시키며 근육의 움직임을 전달한다. 인체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이 작품은 여성은 물론 남성이 봐도 전율할 만한 작품이다.
제이슨 레일리는 이번 공연에서 ‘발레 101(Ballet 101)’이라는 작품을 통해 웃음폭탄을 터뜨린 장본인이다. 안무가 에릭 고티에의 유머감각을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발레 수업의 ‘집중훈련’을 소재로 삼은 작품으로 발레의 5가지 기본동작에서 시작된 발레 동작 101가지가 쉴 새 없이 펼쳐진다. 특히 내레이터는 제이슨에게 갖가지 연속 동작을 요구하고, 그의 틀린 동작도 지적하는 등 한층 익살스러움을 더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조금이나마 국민들의 위로가 되괴 싶다고 밝힌 강수진의 의도와 같이 관객들은 감동과 희열, 기쁨과 긍지를 맛보았을 것이다. 불혹의 나이에 더욱 깊은 향기를 전하는 강수진의 앞으로의 행보에 더 큰 기대를 쏟아본다. (사진제공=크레디아)